엄마 손바닥 같은가재미

나를 만져준 납작하고 여윈 손바닥들

by 고수리

누가 손바닥으로 나를 좀 만져주었으면 싶은 날이 있다. 속이 아프거나 마음에 찬바람이 불 때 어김없이 배와 등을 쓸어주던 납작하고 여윈 손바닥들이 그리워진다.


욕심껏 먹다가 체한 날에 할머니는 반짇고리를 꺼내 왔다. 두툼한 무명실을 이빨로 툭 끊어두고, 라이터 불로 바늘 끝을 구워 소독하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자, 팔 내봐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내 팔을 쑤욱 빼들더니 우악스럽게 쓸어내렸다. 울 할머니는 쪼그만데 참말로 힘은 세지. 팔뚝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피가 몰려 손끝이 벌게질수록 나는 실눈만 겨우 뜬 채로 엄살을 부렸다. “할머니 살살요.” “하이고 겁도 많다게.”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을 무명실로 휘휘 둘러 묶고는 냉큼 바늘로 꾹 찔러 피를 내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면 손끝에 검붉은 핏방울이 봉긋 올라왔다. 할머니는 피를 눌러 짜며 쯧쯧 혀를 찼다. “봐봐라. 쌔까만 거 보이나 안 보이나. 단대이 얹혔고망.”


열 손가락 모두 딴 후에야 체기는 내려갔다. “인제 돌아봐라.” 할머니는 나를 돌려 앉히고 등을 투드럭거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오목하게 만들어 등 한가운데를 터억 세차게 때리고 손바닥을 펼쳐 둥글게 두어 번 쓸어주다가 끝에는 가짜 트림을 내뱉는 것이었다.


“왜 할머니가 트림을 해요? 아픈 건 난데.”

“가만 있으래이. 낫고 있다.”


희한하게도 할머니가 몇 번쯤 나 대신 트림을 해주면 어느새 나도 묵은 트림을 따라 뱉었다. 그러고 나면 정말로 다 나아버렸다. 금세 기운을 차린 나는 “할머니 먹을 거 없어요?” 슬그머니 물었고, 할머니는 “기지배, 뱃고래 하나는 지대루다.”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 배 속에는 고래가 살고 있나 봐. 그래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가 봐. 나는 밥이랑 고등어랑 김치를 와구와구 먹는 뱃고래를 상상했다. ‘뱃고래’가 ‘뱃구레’의 강원도 사투리인 걸 알게 된 건 아이 둘을 낳고 나서였으니,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배 속에 사는 커다란 고래를 상상하며 밥을 먹었는지! 할머니는 “아프니까 가재미나 꿔 먹자.” 했다. 가자미를 꼭 ‘가재미’라고 부르던 할머니. 먹어서 아픈 건 먹어서 낫는 법이라며 아플 땐 꼭 가재미를 구워주셨다.


할머니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 구운 가재미 껍질처럼 가슬가슬하니 다부지다면, 엄마의 손바닥은 껍질 바른 가재미의 하얀 속살처럼 보들보들하니 고왔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자장가 같은 노래를 불러주며 나의 배를 만져주던 엄마의 보드라운 손바닥. 속이 쓰리거나 탈이 났을 때, 엄마는 나를 솜이불에 눕히고 손바닥으로 배를 쓸어주었다. 동그랗게 손바닥 온기가 스미면 아픈 배는 꿀렁이며 움직이기도 하고 쿠루루루 소리를 내기도 하다가 차츰 잠잠해졌다. 따스해졌다. 그러면 나는 아픈 것도 잊고 잠이 들었다. 엄마 손바닥에 배를 맡긴 그 시간이 좋아서, 조금만 꾸룩거려도 조로로 달려가 배를 까고선 엄마 앞에 누웠더랬다.


나의 등을 쓸어주던 엄마의 손바닥도 기억한다. 어려서 툭하면 고열을 앓던 나를, 엄마는 발가벗겨 눕혀놓고 밤새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그런 날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잠이 들다 깨다했다. 슬몃 눈을 뜨고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조차 없을 때에는 누워서 보이는 풍경들이 아득하고 낯설어져 불현듯 모든 게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 엄마….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리면 바로 잠에서 깼다. 모로 누워서 가만가만 내 등을 만져주던 엄마. “엄마 손은 약손. 나아라, 나아라. 우리 아기 나아라.” 뜨거운 나의 등을 쓸어주다가 긁어주다가 조용히 속삭여주면 나는 다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뜨겁게 앓을 때는 먹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아픈 입에도 맛있었던 엄마의 새하얀 음식들이 있다. 간장 한 방울 톡 떨어뜨려 먹는 흰죽, 바삭한 김에 싸 먹는 갓 지은 흰밥, 그리고 구운 가자미.


가자미를 무척 좋아했던 시인 백석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자미’라 부르며 가자미를 아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자미는 비린내가 없고 기름기도 적고 가시는 억세지 않으며 영양도 풍부해서 아이나 환자들이 먹기에 좋은 생선이다. 게다가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은 질리지도 않고 쉽게 조리할 수 있으니, 정말이지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자미’라고 불러주고픈 생선이 맞다.


할머니와 엄마는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를 자주 구워주었다. 앞뒤로 밀가루 묻혀 노릇노릇 구운 가재미 한 마리. 생긴 것이 꼭 우리 할머니 손바닥, 우리 엄마 손바닥 같아서 한없이 착하다. 아플 때 나를 쓸어주던 두 사람 손바닥이 생각나서 나는 가재미만 쳐다보면 그리도 정답다. 껍질이랑 가시를 정성껏 발라 하얀 살만 집어다 입에 넣어주던 두 사람이 떠올라 마음이 보드라워진다.


서른 해쯤 지나자 나도 가재미를 구워주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손바닥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태어나 세상의 온갖 음식들을 한번씩 맛보며 자라는 것처럼 아이들은 작고 사소한 병들도 하나씩 다 아파보며 자랐다. 열이 펄펄 끓고, 먹는 족족 토하고, 자지러지게 울고, 부르르 떨다가 힘없이 늘어지기도 했다. 먹고 아프고 자라는 것이 아이의 일이었다.


아이의 작은 기침 소리 하나에도 따끔거리고, 일그러진 얼굴에 쿵 내려앉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이런 마음이었구나, 아픈 아이들을 돌보며 알았다. 제일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대신 아파줄 수도 금방 낫게 해 줄 수도 없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속 아픈 아이 배를 문질러주는 일. 열 끓는 아이 등을 쓸어주는 일. 우는 아이 뺨을 보듬어주는 일. 납작하고 야윈 가재미마냥 납작하고 야윈 손바닥으로 아이를 만져주는 일, 그뿐. 하지만 그 손바닥은 따스했다.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만져주던 손바닥의 온기가 나에겐 마음의 약이었다. 덕분에 무섭지 않았지. 서럽지 않았지. 외롭지 않았지.


가재미를 구워 아이들에게 발라줄 때마다 나를 만져준 손바닥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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