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영영 늙지 마라, 영영 예뻐라
두 번째 엄마의 손바닥
어린 시절 저와 남동생은 자주 아팠습니다. 둘 다 편도선이 약해서 툭하면 고열을 앓았거든요. 하필이면 그 시절에 우리는, 버스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산골짝에 살고 있었고, 엄마 혼자서 읍내 병원까지 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란 무척 어려웠습니다.
엄마는 우리가 열에 시달릴 때면 홀딱 벗겨서 아랫목에 눕혀두고, 밤새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닦아주었습니다. 끙끙 앓다가 슬며시 눈을 뜨면 곁에 엄마가 보였습니다. 엄마는 괜찮다며 등을 쓸어주었고, 그런 엄마의 손길에 어쩐지 안심이 되어 다시 잠들곤 했어요.
아팠을 때 먹었던 음식들을 하나같이 하얗고 보드라운 것들이었어요. 간장 한 방울 톡 떨어트려 먹는 흰 죽, 마른 김에 싸 먹었던 갓 지은 흰 밥, 그리고 한없이 착하고 정다운 가재미를 자주 구워 먹었습니다. 엄마가 흰 밥에 가자미 살 얹어서 한 숟갈씩 입에 넣어주던 기억이 나요. 열 때문에 꿈처럼 몽롱하고 들떴지요.
의사들은 환자가 미음을 먹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건강해진 것이라며 기뻐한다고 하지요. 아플 때 먹던 음식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맛은 어쩐지 마음을 찡, 울릴 정도로 따스하고도 순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지치거나 아플 때면, 어렸을 때 먹었던 단순한 음식들을 찾게 되더군요.
저는 가재미만 보면 그리도 반갑습니다. 시간이 훌훌 흘러, 아이들이 아플 때면, 흰 밥에 가자미부터 떠올리는 엄마가 되었어요. 가재미랑 고등어는 항상 냉장고에 채워두었다가 한두 마리씩 꺼내 구워주곤 하지요.
제게는 ‘두 번째 엄마’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엄마의 바로 위에 언니, 순자이모인데요.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 고등학교 시절에 저는 순자이모가 살던 익산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엄마랑 뚝 떨어진 타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제가 외로울까, 힘들까, 걱정하며, 이모는 곁에서 엄마처럼 저를 보살펴주었습니다.
할머니를 닮아 역시나 손맛이 뛰어난 이모는 어찌나 맛있는 걸 잘해주었는지. 수능이 끝나고서 오랜만에 저를 만난 엄마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이노무 기지배, 너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제 등짝을 퍽퍽 때리면서 울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투실투실 살이 찐 게 그렇게나 슬펐다고 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순자이모는 사람이 잘 먹어야 힘이 난다며, 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손수 만든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주고는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모가 바닷바람에 말린 가재미를 한 보따리 챙겨주었습니다. 순자이모와 엄마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비어있는 할머니 집을 여전히 살뜰하게 쓸고 닦고 챙기고 있습니다. 순자이모는 자주 할머니 집에 머물며 오징어나 가자미 같은 것들을 어판장에서 떼어와 소소하게 말리고는 하는데요. 바닷마을 산 중턱에 위치한 할머니 집에는 바닷바람이 바로 불어와 생선들을 꾸덕하게 잘도 말려줍니다. 그거 아시나요? 말린 생선은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면서도, 비린내도 적으면서도 감칠맛이 더더 깊어진다는 거.
여름에는 이제 네 살이 된 아이들 손을 붙잡고 온 가족이 할머니 집에 갔습니다. 순자이모와 엄마의 손길이 머문 덕분에 아직도 할머니 집은 온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이모는 아직까지도 제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게 신기하다고 해요.
“햐, 세월 참 빠르다. 수리야. 니가 벌써 애엄마가 됐나. 애 둘 키우느라 고생이다. 그래도 그때가 행복이다. 애들은 쑥쑥 자라지. 꽃맨치로 돌아서면 쑥쑥 자라지. 아이고 예뻐라.”
순자이모도, 우리 엄마도 나이가 들수록 할머니 얼굴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할머니처럼 이야기합니다. 점점 작아지고 자글자글해지는 그 얼굴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고 말아요. 그래서 일부러 씩씩하게 웃곤 합니다. 이모에게 곧 우리집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온다고 자랑했어요.
“이모, 고등어 책에 할머니집도 나오고요. 엄마랑 이모들도 나오고요. 타닥마당도 나오고요. 마당에서 보이는 바다도 나오고요.”
“대단하다 참. 쪼꼬만 게 그걸 어테 다 기억했누. 고맙다. 수리야.”
헤어지는 길에, 이모가 망에다가 정성껏 말린 가자미를 한 보따리 챙겨주었습니다. “애기들은 가재미 잘 먹지. 이런 거 밖에선 못 사 먹는다. 하나씩 꺼내서 꾸워줘라.” 애엄마가 다 된 저는, 이제 이런 생선이 너무 귀한 걸 알아서, 이모, 고마워요. 보따리를 소중히 끌어안고는 히히 웃었습니다. 그러자 이모가 저를 꽉 껴안더니 손바닥으로 등을 쓸어주며 말했습니다.
수리야. 너는 영영 늙지 마라. 지금처럼 영영 예뻐라.
이모가 준 가재미를 어제도 꺼내 구워 먹었습니다.
가재미를 구울 때마다 나를 만져준 손바닥들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