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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May 07. 2021

아가, 꽃 봐라

태어나 처음으로 꽃을 본 아기처럼 우리는

돌배기 아기들을 데리고 나가는 일은 고생스러웠다. 안 그래도 왜소하고 내성적인 내가 대형 세탁기만 한 쌍둥이 유아차를 밀면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엘리베이터라도 탈라치면 시간이 걸리는 데다 자리를 차지해서 눈치를 봐야 했고, 비좁고 울퉁불퉁한 오래된 동네 길을 오를 때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심지어 아기들이 울고 보채기라도 한다면 내가 울고 싶어지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혼자 유아차를 끌고 가는 거의 유일한 외출지는 동네 마트였다. 그래도 장은 보고 밥은 지어야 했으니까.


상자를 쌓아둔 구석에 유아차를 세워두고, 아기들이 채소 과일에 한눈파는 사이에 후다닥 장을 봤다.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오가며 아기들을 봐주셨다. 칭얼거리면 얼러주고 울면 달달한 걸 손에 쥐여주셨다. 마트에서 일하던 청년은 자신도 쌍둥이로 자랐다며 유아차가 오가기 쉽도록 길을 터주고 갈 때까지 문가를 살펴주었다. 그렇게 세상 요란하게 한 바구니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달그락거렸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어느 저녁이었다.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자 아기들이 울기 시작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아기들은 울고, 밤은 오고, 거리는 위험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아기들을 양팔에 안아 들고서 아슬아슬하게 유아차를 밀었다.


“아기 엄마가 고생이네.” 그때 엄마뻘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아기들은 손 탈 테니 엄마가 안아요. 내가 집 앞까지만 데려다줄게요.” 군말 없이 배려하는 목소리. 행여 도움이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괜한 참견의 말을 쏟지 않으려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사이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나는 등이 다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나도 아들만 둘 키워 봐서 남 일 같지가 않네. 지금은 힘들어도 애들 크면 참 든든해요. 힘들 때는 주변에 기대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잖아. 나도 아주머니들이 많이들 도와줬어요.” 다정한 목소리가 다독다독하니 이야기 같은지 아기들도 울음을 그쳤다. 캄캄한 골목 어귀를 돌아 가로등을 지나 어느 집 담벼락을 지날 즈음이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가, 꽃 봐라.”


달곰한 향기가 났다. 담벼락을 올려다보니 하얀 라일락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어스름이 내린 하늘에 별 사탕 뿌려놓은 듯 희붐하게 빛나던 꽃들. 태어나 처음으로 꽃을 본 아기처럼 우리는 라일락을 올려다보았다. 가만한 바람이 지나갔다. 품에 안은 아기들의 무게와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무언가 속삭여주고 싶었지만 목울대가 아렸다. 아름다운 순간에는 어째서 울고 싶어지는 걸까. 그저 오도카니 서서 함께 꽃을 보던, 잊을 수 없는 봄밤이었다.




5월 7일자 동아일보 [관계의 재발견] 칼럼을 썼습니다.


엄마들은 아기 울음소리만 들리면 돌아봅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의 마음이랄까요. 내 아이든 남의 아이든 거의 본능적으로 울음소리를 알아채고 걱정하는 것이지요. 육아가 힘에 부치던 시절, 거리에서 저를 도와주었던 엄마들을 기억합니다. 고맙고 아름다웠던 어느 봄밤의 기억을 나눌게요. 아마 꽃을 보던 그 감정이 무엇인지 엄마들은 알 거예요.



그리고 마트 구석에 세워둔 유아차에서 엄마엄마 찾으며 보채던 아기들은 어느새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씩씩한 어린이들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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