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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Sep 06. 2021

초코쿠키 같은 마음

아이와 미움과 이해를 나눠 먹은 밤

자기 전에 서안이 초코쿠키가 먹고 싶다고 했다. 늦은 밤이니 딱 두 개만 먹자고 하자, 아이는 말없이 한참 씩씩 거리다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엄마 없어지게 할 거야.” 또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엄마 하늘나라로 가게 할 거야.”


이런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너무 놀랐지만, 서안의 눈을 마주 보며 읽으려고 노력했다. 아이의 마음을. 서안은 화가 났고, 엄마가 미웠다. 다섯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미움의 최대 표현이 이 말들이라고 생각하니 찡했다.


서안아. 지금 화가 많이 났구나. 엄마가 많이 밉구나. 그럴 때는 그냥 솔직하게 네 마음을 말해주는 게 좋아. 화나고 미워하는 마음이 나쁜 건 아니거든. 엄마는 서안이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왜 화가 났고 왜 엄마가 미운지 솔직하게 말해주고,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해줘야 해. 말하기 어렵지만 말해줘야 한단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말하지 않으면 하나도 모르거든. 엄마가 귀 쫑긋하고 잘 들어볼게.


서안은 동글동글 눈물방울을 흘리면서 초코쿠키가 더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먹지 못하게 해서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서안을 안아주고 초코쿠키 하나를 더 꺼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소보다 꼼꼼하게 양치질을 했다. 아이는 오늘 밤은 초코쿠키를 먹었지만, 내일 밤에도 초코쿠키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밤에 단 과자를 먹는 일이 해롭다는 걸 아이도 다 알고 있으므로.   


살아가며 분노와 미움을 느끼는 순간은 넘칠 듯 많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도 느낄 것이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을 부정적이라고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냐며 다그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말하지 못한다면, 온몸에 꽉 차 버린 솔직하고 뜨거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 알지 못해서 나는 오랫동안 자책하며 살았다. 긴긴 시간을 지나 나와 꼭 닮은 아이를 만나 가르쳐준다. 미워하는 마음도 자연스러운 거야. 그것도 네 마음이란다. 그 마음을 어떻게 꺼내 말해볼까. 그 마음이 향하는 진짜 마음은 뭘까.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늦은 밤에 더 먹고 싶지만 고민스러운 초코쿠키 같은 마음을 서안과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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