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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24. 2023

엄마 예술인에게 가장 큰 힘은 돌봄 지원

2022년 10월, 예술인-터뷰 고수리 작가

안녕하세요. 고수리 작가입니다. 

작년 10월, 이맘때 진행했던 인터뷰를 공유해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만드는 격월간 <예술인>에 '엄마 예술인'의 예술활동과 예술활동 지원에 관하여 서면 인터뷰를 했습니다.


원래 오늘은 소설 완결 연재를 올려야 하는 날인데요. 일주일 동안 책 작업들과 기고 작업들, 강의까지 8개의 마감을 해내고 아이들 참여수업에 다녀왔다가 기어코 병이 났어요. 아이도 갑자기 열이 펄펄 나서 밤새 간호하다가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고 있어요. 해내야할 것들이 너무 많은데 아이도 저도 아픈 날. 이럴 땐 정말 일곱 살들처럼 와앙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소설은 휴재하고요. 대신, 언젠가 꼭 공유해려 했다가 올리지 못한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시간이 가장 절실해요. 밥 먹을 시간도 누굴 만날 시간도 엄마 예술인인 저에겐 매우 절박하고 초조한 시간이기에 자주 포기합니다. 어제도 제가 대학강의 제작하는 동안 아이들은 '예술인자녀돌봄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놀았습니다. 일주일에 5시간이지만, 저에겐 너무도 귀한 시간이에요. 아마 이 지원이 없었다면 저는 첫책만 남기고 사라진 작가가 되었을 거예요. 엄마 예술인들을 위한 돌봄 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엄마 예술인들이 돌봄과 작업을 두고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자신을 챙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먼저 저부터 그래야겠지요. 어디선가 홀로 작업하는 엄마들 모두 힘내길 바라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격월간 <예술인> 2022년 10월 예술인-터뷰




여섯 살 쌍둥이 형제를 키우며 4권의 책을 펴내고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글 쓰는 엄마’ 고수리 작가. 올해로 11년차 작가인 그는 KBS 〈인간극장〉을 비롯한 휴먼다큐 작가로 일했고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등어-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마음 쓰는 밤』 등의 책을 펴냈으며 동아일보 칼럼 〈관계의 재발견〉과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 시나리오 작업 등을 해오고 있다. 에세이 작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스스로는 각종 콘텐츠 구성과 카피라이팅, 아동문학 작가 등 다양한 글 작업을 하기에 ‘프리워커’라고 생각한다. 글쓰는 엄마 작가로 살아가는데, 그 어떤 지원금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재단)의 예술인 자녀돌봄 지원이 힘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를 만났다.


고수리 작가


작가로, 글쓰기 강사로, 엄마이자 예술인으로 1인 다역은 쉽지 않으실 텐데요. 재단의 지원은 작가님에게 어떤 힘을 주었나요?

엄마 예술인으로 살아온 시간은 참 지난했어요. 제가 주로 쓰고 가르치는 글은 에세이인데요. 7년 전 첫 책을 출간하고 바로 엄마가 되었어요. 제 주요 커리어인 에세이 작가를 시작함과 동시에 엄마가 된 것이죠. 쌍둥이 형제를 돌보며 분투하며 일해야 했어요. 양가 부모님이 멀리서 사셔서 도움을 주실 수 없었기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살림과 육아는 온전히 제 몫이었거든요. 작업이나 강연 의뢰가 들어와도 아이들 돌봄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그때부터 무조건 일했어요.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지만, 그만큼 절박하게 일이 하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이 3살 때,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재단에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어요.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기 위해 수십 군데 연락을 돌리며 필요한 문서들을 모으면서 얼마나 울고 좌절했었는지요. 제가 작가활동을 한다는 걸 증명할 문서가 없더라고요. 예술활동증명을 한 이후에야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어요.


재단의 여러 복지 지원 중에서도 가장 도움이 된 제도는 ‘예술인 자녀돌봄 지원’이었습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그리고 가까이에 예술인자녀돌봄센터(이하 예봄센터)가 없었다면 일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처럼 4권의 책을 내고 신문에 칼럼을 쓰고, 수백 명의 학생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도 하지 못했겠죠. 특히, 글쓰기 수업을 할 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일반인 대상 글쓰기 수업이라 주로 평일 저녁에 진행되었기에 아이들 28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일주일에 2번, 마포 예봄센터에 돌봄을 맡겼어요. 기저귀도 못 떼서 예봄센터에서 가장 어렸던 아이들이 이제는 무럭무럭 자라 동생들과도 잘 놀아주는 6살 형님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예술인자녀돌봄센터를 이용하며 느낀 점을 듣고 싶어요.

작년에 코로나19로 유치원이 오래 문 닫았을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코로나19로 지금껏 해왔던 모든 대면수업이 취소되었고, 아이들 돌봄은 고스란히 제 몫이 되었고요. 경제적 타격도 컸지만, 제안이 와도 작업할 시간이 없는 게 더 힘들었어요. 아무리 밤을 새도 마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평일 오전에 마포예봄센터에 ‘긴급돌봄’ 신청을 했어요. 일해야 하는데 아이들 맡길 곳이 없다고 긴급돌봄이 가능하느냐고 전화 드렸을 때, 센터장님의 그 말 한마디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어머님, 많이 힘드셨죠? 오전 9시부터 긴급돌봄 가능해요. 힘내세요.”라고요. 


‘돌봄’이란 사람이 사람을 보살피는 일이죠. 돌봄이 어려운 건 애정과 진심이 깃들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고요. 그때 그 말을 듣고 센터장님이 얼마나 이 일에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3년 넘게 예봄센터를 오갔는데, 센터장님도 선생님들도 정말 한결같으세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애정으로 돌본다는 걸 느끼고요. 수업이 늦게 끝나기에 밤 10시까지 긴급돌봄을 신청한 때도 많았는데 얼굴 한 번 찌푸리신 적이 없었어요. 늘 괜찮다고 헤아려주셨죠. 정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에요.


▲마포 예술인자녀돌봄센터의 모습. Ⓒ예술인자녀돌봄센터


마포 예봄센터는 망원동 주택가의 마당 있는 가정집 같은 2층짜리 주택인데요. 아이들이 마당에서 흙놀이 물놀이를 하거나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요. 유기농 재료로 만든 식사와 간식이 제공되고요. 균형 잡힌 식단표를 미리 짜서 공지해주세요. 저녁엔 아이들이 둘러앉아 같이 밥을 먹어요. 저희 아이들은 유독 내성적이었는데, 여기서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과 만나서 같이 놀면서 무척 활발해졌어요.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이 만든 귀엽고 이상한 작품들을 주렁주렁 같이 달고 놀고 계세요. 형 누나 동생들을 만나고, 다정한 어른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배울 수 없는 아주 많은 걸 배웠을 거라 믿습니다.


얼마 전에 글쓰기 수업과 그곳에서 만난 학우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음 쓰는 밤』을 펴내셨죠?

올해 10월에 출간한 『마음 쓰는 밤』도 재단 덕분에 안정적으로 집필할 수 있었어요. 올해 상반기 예술인창작준비금을 지원받아서 쓴 책이거든요. 창작준비금으로 공유오피스에 등록해 작업실처럼 오가며 집필했고, 고질적인 어깨와 허리 통증을 치료하는 의료비로도 사용할 수 있었어요. 예술활동보고서에도 계약서와 출간 증명 자료들을 제출했고요. 의미 있는 지점은, 이 책이 제가 예술인돌봄센터에 아이들을 맡기고 이끌었던 글쓰기 수업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거죠. 지금도 예봄센터에 아이들을 맡기고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갑니다. 특히, 세종사이버대학교 수업은 모두 온라인과 줌으로 진행되는데요. 아이들을 맡기고 강의 제작촬영을 진행하고 줌수업을 합니다. 100여 명의 학생이 수업을 듣습니다. 그간 제가 가르친 글쓰기 수업에서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작가지망생이 브런치 작가가 되거나 에세이스트가 되었어요. 책을 출간한 작가도 여럿이고요.


예술활동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어렵지만 예술의 효용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한 예술인이 자신의 재능과 활동을 안정적으로 나눌수록 다양한 세대의 사람이 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거든요. 예술의 영향력은 가시적으로 증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세다고 믿어요.


▲망원동 책방에 진열된 고수리 작가의 책들.


그 외에도 재단이 있어서 도움이 되었던 일들이 있다면요.

작가 경력을 조금씩 쌓아가던 시기에 간혹 이상한 제안을 받았어요. 지금 살펴보면 말도 안 되는 계약서인데요. 신인작가니까 인세 6%로 하겠다, 계약 유효기간은 10년이다 등등. 신인작가여도 보통 인세는 10%, 계약 유효기간은 5년이 기본이거든요. 세세한 조항들도 이상하게, 작가에게 불리한 사항들이었고요. 출판 분야에 아는 사람도 지식도 없어서 막막했을 때 재단에서 보급한 「출판분야 표준계약서」를 보고 해결할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체가 불분명한 출판사와 계약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해요. 최근에 진행했던 7번째 저작물 계약은 문체부에서 고시한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로 계약했는데요. 1인출판사였는데 대표님이 먼저 문체부 고시 표준계약서를 꺼내 주셨어요. “2021년 2월 22일에 제정된 표준계약서예요”라는 말씀과 함께. 1인출판사여도 믿을 수 있겠구나 신뢰가 쌓였죠. 재단 누리집에서 예술 표준계약서와 활용가이드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시길 바라요.


재단의 예술인 신문고와 법률상담·컨설팅을 이용한 적도 있었어요. 출판 계약 관련해서 분쟁을 겪었을 때도, 작업료 관련 명확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아 곤란할 때도 전화로 상담을 했었어요. 상담 후에 상대측에게 저는 예술활동증명 예술인이고, 예술인 신문고라는 제도가 있으며 재단에 조언을 구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제야 바로잡더군요. 


사실, 무명작가에게 이런저런 제안들은 간절하고 감사하죠. 그러나 제대로 계약하고 작업해야 후에 탈이 없어요. 귀한 작업물과 합당한 작업료를 지켜야 해요. 보통 이 분야는 이렇게들 한다고 말하거나 작업료만 쏙 빼고 제안한다면 반드시 살펴봐야 해요. 조언 구할 곳이 없다면, 재단의 사업과 지원들을 잘 살펴보고 활용해보시길 바랍니다. 상담도 해보시고요. 담당자분들이 친절하고 세심하게 이전 사례를 찾아보며 답변해주셨어요.



마지막으로 예술인 동료, 특히 여성 예술인들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어요. 그전에도 제도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제가 찾아서 신청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진 못했거든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려면 내 일을 증명해야 하는데, 증명할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예술활동증명을 신청했죠. 


제가 엄마 작가로 일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주위에 엄마 작가 동료들이 별로 없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 살펴보니까, 결혼을 했어도 출산 자체를 포기하는 여성 예술인들이 아주 많았어요. 출산을 했더라도 육아와 돌봄으로 자신의 일을 포기해버리거나, 아예 창작활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활동을 못하는 엄마 예술인이 많았고요. 창작할 시간과 경제력이 없으니까 더더욱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없고요. 저는 운좋게도 예봄센터 가까이 살고 있었고 그 덕분에 일할 수 있었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엄마 예술인으로 가장 절실했던 건, 마음 편히 아이들을 맡기고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지원금보다 육아돌봄 지원이 훨씬 도움이 돼요. 창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도록 해주는 돌봄 지원이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과 삶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속성을 가진 예술 분야에서, ‘엄마됨’이라는 경험은 아주 큰 변화이자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낳고 키워본 경험은 완전히 다른 시선과 폭넓은 이해를 선물하거든요. 다양한 세대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예술활동의 품이 더 넓고 깊어졌어요. 저는 엄마인 여성예술가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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