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어!” 숙제하던 아이들이 공책을 내던지며 엉엉 울었다. 가슴이 와르르 내려앉았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쌍둥이 형제는 학교에서 무언갈 배우기 시작했다. 칠판을 마주하고 열 맞춘 책상에 앉아 시간표를 따라 교과서를 펼치고 수업을 들었다. 책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설 때부터 긴장하던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완벽하게 척척 해낼 리가. 교육과 생활과 관계의 모든 면에서 배움은 매 순간 도전이었다. 도전의 결과를 단순하게 성공과 실패로 가른다면 아이들은 매일매일 실패했다.
또래들 사이에서 배운 건지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망했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또한 ‘이번 생은 망했다’며 우스갯소리 하던 어른들을 따라 한 걸 테지만, 여덟 살 아이들 입에서 망했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실패하다’와 ‘망하다’는 엄연히 다르니까. 어떤 일에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한 게 아니라, 어떤 존재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나버렸다는 무시무시한 말이었으니까.
망했다고 우는 인생의 초심자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뭐든 잘하고 싶은데 맘처럼 되지 않아 속상한 감정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바에야 포기하고 회피하려는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너는 지금 망한 게 아니라 실패한 거라고, 실패가 속상하긴 해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실패하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고 일러주고 싶었다.
“오늘은 뭘 배웠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묻곤 했다. 아이들은 배운 것 중에서도 아는 것들, 잘하는 것들, 자신 있는 것들만 골라 말했다. 당연했다. 자신이 이룬 성취와 인정받고 싶은 재능을 자랑하고 싶으니까. 어렵고 부끄럽고 쓰라렸던 경험들은 나조차도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곰곰 고민해 본 끝에 질문을 바꿔 물었다.
“오늘은 어떤 실패를 해봤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온 가족의 실패담을 나눴다. 줄넘기에 실패했어. 달리기에 실패했어. 발표하기에 실패했어. 칭찬받기에 실패했어. 아이들도 엄마도 아빠도, 크고 작은 하루의 실패들을 일상적으로 나눴다. “실패해서 뭘 배웠어?” 이어 물었다. 서로의 실패와 배움의 경험을 칭찬하고 응원하고 위로하고 웃어주었다. 잘했어, 고생했어, 괜찮아, 멋지다. 아이들은 서서히 ‘망했다’는 말 대신 ‘실패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다시 해보자고 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실패담을 나누고 싶다. 정작 아이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언제나 힘이 되는 실패담을. 엄마는 날마다 지켜보았단다. 너희는 뒤집기에 실패하고, 걸음마에 실패하고, 블록 끼우기에 실패하고, 물 따르기에 실패하고, 단추 잠그기에 실패하고, 뚜껑 열기에 실패하고, 젓가락질에 실패하고,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에 실패하고, 종이접기에 실패하고, 철봉 매달리기에 실패하고, 글씨 쓰기에 실패했어. 때마다 크게 울었지. 울고 나서는 다시, 또다시 시도했단다. 참 대단하지. 이제는 스스로 잘하는 것들이란 게 신기하지. 실패하고도 다시 시도한 너희는 지금껏 용감하고 훌륭하게 자라왔어. 명심하렴. 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닌 성장담이란다.
모두들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개인적으로 저는 아침부터 실패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제 책에 달린 악플을 읽었거든요. 작가가 읽을 것을 알고도 쓴 다분히 의도적인 악플이었지요. 종종 글 한 편에 달리는 악플에도 며칠간 마음이 힘든데, 책 한 권에 달린 악플은 또 얼마나 오래도록 제 마음을 아프게 할까요. 연쇄적으로 지난 악플들도 줄줄이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실패한 마음이 명치에 체기처럼 꽉 얹혀선 내내 토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노트북을 열고, 글 작업을 시작합니다. 마음을 다독이며 이 칼럼을 올립니다. 올해로 14년 차 작가가 되었지만 신문에, 방송에, 책에, 지면에,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일은 한 번도 익숙해진 적이 없습니다. 매 순간이 도전. 도전의 결과를 단순히 독자의 반응으로 가른다면 제 글쓰기는 대체로 실패에 가깝습니다. 글이 좋다는 독자의 칭찬은 가끔이고, 대체로 무반응이거나 연차와 저서가 늘어날수록 잦은 악플을 받게 됩니다.
어쨌든 오늘은 '칭찬받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럼 오늘 실패에서 배운 건 뭘까. 독자에게 칭찬받지는 못했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어떠한가에 생각이 미쳤어요. 악플이 달렸던 책과 오늘의 글은 스스로에겐 칭찬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평가의 잣대를 떠나 마음과 태도와 노력과 책임에 있어서, 작가 자신은 유감없이 충분하게 잘 써본 글이었으니까요. 잘했다고 잘 썼다고. 스스로를 칭찬합니다.
이 칼럼을 썼던 신문사 댓글란에는 아직 악플이 없네, 다행이다. 조마조마하게 칼럼을 다시 읽다간 싱겁게 웃었습니다. 하트 하나가 반짝이는 게 예뻐서요. 제가 쓴 글에는 '좋아요' 하트가 하나씩은 눌러져 있습니다. 심지어 악플이 달린 글이라도 하트 하나는 유일하게 반짝입니다. 공개적으로 쓴 글에는 언제나 가장 처음 달려가 제가 제 글에 '좋아요'를 누르기 때문이죠. 저는 제 인생을 쓰는 작가이자 자기 자신의 첫 번째 독자입니다. 저는 제 글을 좋아합니다.
실패한 오늘도 조금만 울고 다시 시도합니다.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이고 다시 내 글을 써보자. 묵묵히 글 쓰는 저를 믿어보려고요. 이러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을 누구라도 칭찬해요. 오늘도 홀로 읽고 쓸 당신을 칭찬합니다. 무수히 실패하고도 다시 무언갈 써 내려갈 용감하고 훌륭한 마음을요. 실패했어도 잘했어요. 고생했어요. 괜찮아요. 참 멋져요.
우리는 성장담을 집필 중입니다. 백만 번을 실패한대도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