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워킹맘 분투기)
제약업계에는 여러 개의 포지션이 있지만 10년 정도 해온 업무는 신입으로 진입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던,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 진짜 저건 '내 일'이라고 생각해온 업무였습니다. 너무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진입장벽이 높다 보니 돌고 돌아 어렵게 온 자리라 그런가 태초에 처음 시작할 땐 유럽 회사 시차에 맞춰 저녁 다섯 시부터 리셋되는 회의 일정도 역시 외국계 기업이라 그렇다며 신이 났었죠. 그 누구보다 성과지향형에 태스크 중심적인 사고로 자란 저였어요. 마침 제가 맡은 일은 타임라인이 명확하고 목적도 뚜렷했기에 평생 해도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태스크도 프로젝트로 생각했던 저는.. 남보다 늦지 않게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일에도 꽤나 힘을 썼었습니다. 고루하지만, 서른 하나에 막차라 생각하고 결혼하고 허니문 베이비까지 가져 속전속결로 태스크 클리어 외치며 "임신"을 했었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컨디션이 곤두박질치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출근길마저도 정말 고역이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역사에서 나는 냄새에 울렁거림을 간신히 진정하고 자리에 앉으면 카펫 냄새가 올라와 속을 괴롭혔고, 설상가상 키보드에 올려둔 손에서도 핸드크림과 살내가 묘하게 섞인 냄새가 났습니다. 낮잠이라곤 자본적도 없는데 계속 눕고만 싶었고요. 그 당시 제가 맡은 업무는 전체 팀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신제품 관련된 것이었어요. 자료 보완 요청이 이어지고, 협의할 일도 많은 가운데 휴가를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출근하자마자 눕고 싶다니! 세상에...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달라진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뱃속에 든 아이를 두고 모성애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생기지도 않더군요. 책상에 배가 닿을 지경인데도 밤 열 한시를 넘기기 일쑤였죠. 심지어 양수가 터져서 출산이 임박했는데도 답변서가 남았다며 출근했었습니다. 주변에서 그래도 엄마가 애를 좀 봐야 된다고 하길래 ‘이렇게 긴 휴가는 처음인데!’ 여행도 갈 수 있나 기대하며 육아휴직은 조금만 쓰고 6개월 안에 복직하면 복직함과 동시에 신약 관련 업무를 맡기로 얼마나 졸라댔는지.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 나오지만 그때는 그랬었어요. 어렸나요.
친정엄마는 일하는 딸의 미래에 상당히 적극적이셨습니다. 덕분에 마음 놓고 계산기를 두드릴 수 있었달까요. 제가 받는 월급에서 엄마한테 양육비 드리고 나면 얼마가 남을지. 선배맘님들이 갓난아이를 두고 나가려면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의 커리어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가 들든 남는 것은 셈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고액 연봉자는 아니지만 양육비 드리고도 생활비가 남으니까 수지맞는 장사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두고 나간다'의 무게를 몰랐거든요.
태어난 아기의 실물을 영접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기막히게도 모성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제 안에서 용천수 샘솟듯 솟아올랐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행복감이 너무 커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어요. 그렇지만 반전은, 저에게 이런 행복감을 준 아이의 성장이 저의 성취가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성과지향형에 태스크 중심적이라서 아기가 뒤집고 기는 것조차 "우리가" 해결해야 할 태스크로 보였으니까요.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아이를 두고 나가서 일을 하면, 내 시간도 갖고 생활비에 보탬도 되며 엄마한테 적잖이 합법적인 용돈도 드리고 아이와 저의 과제 분리를 성공적으로 해낼 기회라 여겼습니다. 이 얼마나 수지맞는 육아인가.
거룩한 모성애를 두고 무슨 천박한 비교냐고 할는지 모릅니다. EBS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마더쇼크'에서 말하듯, 모성은 본능이 아닙니다.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중에 아이에게는 엄마에 대한 애착이, 엄마에게는 아이에 대한 모성이 자라나는 것임을 그때는 몰랐을 뿐입니다.
워킹맘이어도 그 형태는 다양합니다. 제가 유독 야근도 출장도 많은 타이트한 환경에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저의 상황은 아이가 둘이 되면서 더욱 극적으로 변한답니다. 저는 휴직을 택했지만 아직 같은 직종에서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제가 관찰해둔 그분들만의 방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저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