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다. 온몸이 작대기처럼 곧추선다. 갈라진 혀를 널름거리며 기어가는 뱀을 피해 까치발을 내딛는다. 들고 있던 주전자 주둥이에서 막걸리가 쏟아졌다. 뱀이 우글대는 갯가 논은 정말 싫다. 둑방을 쏘다니던 남자애들은 무더기로 똬리를 틀고 있는 뱀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댔다. 모내기꾼들이 자리를 펴고 밥을 먹는 동안 나는 몸을 떨고 서 있었다.
모자와 옷, 운동화, 배낭까지 온통 검은 색인 남자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꼼짝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자리는 남자 옆뿐이라 그의 다리와 의자 사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느라 안간힘을 썼다. 다리가 스칠 때 오싹 소름이 돋았다.
미사가 시작되었다. 남자는 순서를 따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단을 향해 일제히 일어설 때면 부동의 자세가 더 드러났다. 신성한 성당에서 무슨 짓이람. 이어폰 좀 빼고 미사에 참예하라고 말해볼까. 아니지, 그러다 해코지라도 하면 어째. 뱀에게 다가간 남자애들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나타나 대신 말해줄지 모르지. 나는 간간이 남자를 흘낏거렸다.
오늘따라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받아들이라는 신부님 강론이 길게 이어졌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곤두선 마음을 내려놓으려는데 남자의 이어폰 속 여자가 악을 써댔다.
그는 이곳에 왜 왔을까. 단지 찬바람을 피해 들어온 것일까.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일지 모르지. 소리를 줄이든가 의식을 따라 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 이어폰 밖으로 노랫소리가 크게 새어 나올수록 그가 더욱 불편해졌다. 내 상식의 잣대로 순서에 따라 남자를 일으키고 앉히기를 반복했다. 그도 모자라 못마땅한 눈빛을 쏘아 보냈다. 순간 남자가 움찔하더니 눈을 떴다 감았다. 내가 하는 짓을 다 알고 있다는 몸짓 같아 더럭 겁이 났다.
남자와 나 사이에는 검은 배낭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다. 혹시 저 안에 날카로운 물건이 들어 있는 건 아니겠지. 쳐다본다는 이유 하나로 해치는 일이 더러 있지 않던가. 눈을 내리깔고 엉덩이를 슬그머니 반대쪽으로 밀어내며 최대한 그에게서 떨어졌다. 앞에 둔 가방도 소리 나지 않게 옆으로 살짝 옮겨 놓았다. 그런들 무슨 소용이랴.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마음은 이미 남자에게 잡아먹힌 상태다. 나는 앞사람의 뒤통수에 대고 무언의 구원을 요청했다. 가끔 그를 쳐다보던 사람들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제단에 걸려 있는 십자 고상만을 간절히 바라보았다.
미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신부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신자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눈인사를 건넸다. 평화를 빈다는데 설마 해코지야 하겠어.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남자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평화를 빕니다!”
그는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반사된 내 목소리만 허망하게 되돌아왔다. 그의 무관심에 슬그머니 긴장이 풀렸다. 해칠 마음을 먹었다면 사건은 벌써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미사가 끝났다. 사람들은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나는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눈을 감고서도 내 기척에 재빠르게 다리를 틀어주었다. 이어폰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몸집이 자그맣다. 솜털이 솟은 보송보송한 목덜미에 모자 속에서 빠져나온 긴 머리 가닥이 늘어져 있다. 남자가 아닌 여자? 놀라 무춤하는 사이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앳된 여학생이다.
갯가 풀섶에는 뱀 허물이 나뒹굴었다. 어른들은 뱀이 자라려고 허물을 벗는다 했다. 생명체가 빠져나간 꺼풀은 햇빛을 받아 삐득삐득 말라갔다. 남자애들이 그것을 막대기에 걸치고 휘두르며 다녔다. 나는 그마저도 혐오스러워 기겁을 하고 달아났다.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은 그녀는 내 편견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녀는 남자라는 대상을 허물로 쓰고 싶었던 걸까. 프랑스의 시인 쥘 르나르는 뱀을 네 글자로 표현했다. 너·무·길·다. 생긴 모양대로보자면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인간과 뱀 사이 악연의 역사는 너무 길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뱀은 그 속에 갇혀 서서히 죽어간다는데 나는 내 허물에 갇혀 굳어 가는 건 아닌지. 껍질만 보고 뱀으로 오인한 나는 허물을 벗겨내듯 황급히 자리를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