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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Sep 15. 2022

불편한 이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는 c브랜드 매장이다. 아침 일찍 달려와 단말기에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적고 대기표를 받았다. 카카오톡으로 순번을 확인하며 명품관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 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독보적인 인기 탓에 아무리 가격을 인상해도 오늘이 제일 싸다는 말이 실감났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브랜드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고 뭐라도 집어 들고 가야 손해를 면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도대체 그 이름이 뭐라고, 나는 새로 얻은 시어머니라는 이름에 설레어 여기까지 왔다. 해질녘이 되어서야 차례가 돌아왔다. 


  

가방들은 반짝이는 이름표를 달고 도도하게 앉아 있다. 입고된 상품이 몇 점 안된다는 점원의 말을 들으며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사고 싶은 제품은 누군가의 손에 낚여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괜한 발짓만 하고 있는 내게 점원이 다가와 찾는 제품이 곧 입고된다고 귀뜸해 주었다. 몇 번을 와도 허탕 치기 일쑤인데 나더러 운이 좋다고 했다. 내 돈 내고 횡재한 기분이다. 의기양양하게 카드를 꺼내 들자 직원은 신분증을 요구했다. 본인 명의 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으며 현금으로 계산할 때도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름을 확인한 직원은 대기명단에 적힌 것과 다르다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름이 또 말썽을 부렸다. 이름과의 충돌은 서울로 전학 온 첫날부터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멀쩡한 내 이름을 두고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 이름은 나보다 생김도 예쁘고 성격도 쾌활한 옆집 친구의 것 이었다. 향숙香은 아니더라도 애칭으로 부르던 깐나나 막둥이라면 모를까. 전학 통지서가 잘 못 되어 이름이 뒤바뀐 게 분명했다. 내칠성 없던 열두 살 아이는 입도 달싹 못하고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날 이후 한 번도 불린 적 없는 이름은 주워 담지도 버리지도 못한 체 내 것이 되었다. 


  

그 애를 부를 때면 입에 착 붙게 어울리던 이름이다. 내게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다. 아무리 불러 봐도 낯설었다. 가운데 ㅑ라는 이중모음과 ㅐ라는 단모음은 넘지 못할 벽처럼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름이 예쁜 아이들 틈에서 나는 풀이 죽어갔다. 앞에 앉은 아이가 행주라는 별명으로 부를 때마다 하얀 행주가 걸레가 된 기분이었다. 찐빵처럼 볼록한 그 애 뺨을 터트려 버리고 싶었다. 


  

불편한 이름은 부르기조차 어렵다. 성의 끝소리 ㅇ과 가운데 끝소리 ㅇ이 부딪혀 정확하게 발음해야 알아들을 수 있다. 잘 알아듣게 하려고 강조하면 할수록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이름을 듣고 얼굴에 이름자가 묻었나 살피듯 사람들이 쳐다볼 때면 멋쩍게 웃고 만다. 본명을 써야 할 때라도 예명이 먼저 튀어 나오고, 행여 누가 알까 눈치를 살피며 전전긍긍한다. 


  

사람에게 이름이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꽃이 아니었다는 시처럼 이름이 불린다는 것은 정체성이 부여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름은 존재이고 관계이다. 부르기 좋은 이름은 존재를 돋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론 허상에 빠지게도 한다. 이름에 갇혀 숱한 세월을 보낸 나처럼. 잔뜩 폼을 잡고 간 명품매장에서 며느리에게 숨기고 싶었던 이름이 들통 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하러 갔다 서기원 앞에서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지 모른다. 큰언니와 돌림자로 하고 싶었다던가, 이름자대로 행복하기를 바랐다던가. 매장에는 볼품없어 보이는 상품들마저 브랜드에 기대어 한껏 뽐을 내고 있다. 내 이름도 불러주면 저렇게 돋보일까. 이름의 의미를 노래한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고. 욕망을 대표하는 브랜드 앞에서 존재감 없던 이름이 호명되었다.  나의 본명 행숙幸淑, 이제 남은 생을 이름자에 기대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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