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앞산이 낮게 내려앉았다. 공중에 잠자리가 떼지어 난다. 제비 한 무리가 뒤를 쫓는다. 비행능력이 최고라는 잠자리와 곡예비행에 능한 제비가 한바탕 전투를 벌이다 흩어진다.
날던 제비 한 마리가 처마를 기웃댄다. 빈 집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더니 사람이 든 걸 알았을까. 내 방 앞을 맴돌며 지지배배 지저귄다. 또 한 마리가 날아든다. 전깃줄을 타고 앉아 고갯짓하더니 V자 꼬리를 흔들며 사라진다.
제비 부부 안전점검 마치고 서까래 끝에 터 잡았다. 물고 온 진흙을 기둥에 찍더니 번갈아 들랑날랑하며 기초공사를 다진다. 에헴, 헛기침 소리에 설핏 눈 맞추고 태연히 돌아선다. 제 천적이라도 막아줄 사람이라 여기는가.
강남 갔던 제비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십 팔년 간 개체수 백분 일로 줄었단다. 지구생명보고서가 그 이유를 밝혀준다. 먹이 줄고 오염되고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제비를 몰아냈다. 서울시는 제비를 보호종으로 지정했다는데, 이쯤 되면 천연기념물 될 날 머지않았다.
이 마을에 떼 지어 날아온 제비들은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귀소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찾아온 나와 같은 처지일까. 아니면 귀하신 몸이 된 것을 확인하러 왔을까. 낡은 집에 유일하게 돋보였던 서까래 살려두길 잘했다.
“에, 에…마을 회관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름맞이 팥죽 잔치소식에 잘잘대며 회관으로 달려간다. 양은솥 한가득 걸러낸 팥물 용암처럼 부글댄다. 머리 맞대고 반죽 밀다 팥알 같은 말이 툭 터진다.
“우리 집에 제비 왔어요.”
“못 써. 똥 싸고 비듬 떨어져.”
말이 끝나기도 전 반죽 썰듯 단칼에 잘려 나간다. 자랑 끝에 불붙었다. 새끼들이 엉덩이 돌리고 똥 싸면 창문으로 날아들겠다. 주둥이 벌리고 밥 달라 울어 젖히면 시끄럽겠다. 예서제서 일러주는 비법을 전해 듣고 달달한 팥죽 먹는 둥 마는 둥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온다. 흙 발라 놓은 자리 올려다보니 벌써 눈썹달만큼 테가 둘러져 있다. 의자 놓고 올라서서 미끄러운 비닐로 달을 가린다. 접착제 같은 제비 침 아무리 발라 이겨도 붙지 못하리. 오호라, 사람이 천적보다 무섭다.
제비 오면 복 굴러 들어온다는 말 옛날 옛적 얘기. 둥지에서 떨어져도 못 본체할 변한 인심. 터 잃은 제비부부 여기 갸웃 저기 갸웃 맴돌다 돌아선다. 가진 자 유세 떨 듯 꼼짝 않고 지켜본다. 체구 작아도 강남까지 가는 기개로 포기 않고 날아든다. 어디서는 대우받고, 어디서는 내쫓기고, 먼 길 찾아와 찬밥신세가 따로 없다. 제비 부부 사정하듯 눈앞을 맴돈다.
집 짓는데 일주일, 알 낳고 부화하는데 보름, 둥지 떠날 때까지 이십 일, 대략 한 달 반. 이 마을에 날아든 나도 철새이긴 마찬가지. 산 설고 물선 동네로 왜 왔느냐는 날 선 물음에 주눅이 들어 일 년, 둥지를 보수하는데 또 일 년, 농지원부까지 만들어 농부가 될 기반을 다진 지 올해로 삼 년. 고향 가까이 살고 싶어 천리 길을 찾아온 속내는 묻어두고 말았다. 그사이 울타리로 심은 사철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올 봄엔 담황색 꽃을 피워냈다.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향내를 내는 울타리 꽃처럼 나도 새댁이라는 고운 호칭을 얻었다.
텃새들 내준 자리 둥지 튼 마당에 텃세를 부리다니. 어쩌면 제비들이 나보다 먼저 이 집의 주인이었을지 모를 일. 야박한 사람인심 강남까지 소문 날까 무섭다. 핀으로 박은 비닐을 서둘러 거둬낸다. 네가 있어야 내가 살고, 네가 살아야 내가 있는 자연의 이치는 더불어 공존이다. 임차인 제비부부, 임대인 안전지킴이. 갑도 을도, 공증도 없는 서까래 계약서에 눈도장 찍는다.
신바람난 제비부부 미끈한 전신곡선을 흔들며 날아든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 소리 청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