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에세이7] 겨울방학 생존기
세 아이와 함께한 기나긴 겨울방학이 끝이 났다.
정확히 1월 14일부터 3월 3일까지, 무려 49일간의 긴 대장정이 끝이 난 것이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싱가포르로 떠났다. 남편과 하는 사업 때문에 제대로 된 여름휴가가 없는 우리는 겨울 도시여행을 짧게 계획했다. 싱가포르까지 갔으면 최소 일주일은 있어줘야 대단한 여행을 했다고 기념하겠지만, 2박 3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도시여행을 뜨겁게 하고 돌아왔다. 커다란 빌딩 숲과 훌륭한 뮤지엄 몇 개만 보고 돌아와도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은 작은 마을에 사는 우리로서는 짧아도 대단히 멋진 여행이었다.
방학의 시작은 좋았으나 세 아이에게 지루한 제주의 겨울을 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바쁜 엄마아빠, 재미있는 미디어와 게임마저 거의 금지된 환경, 친한 친구들의 전학,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이 손을 뻗어 세 아이를 감쌌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적당한 예습과 책, 한자 공부, 영어 앱.. 말만 들어도 하품이 나오기 그지없다. 하지만 세 아이는 서로가 있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다른 남매이지만 땅바닥 긁기 밖에 없는 환경에서 좋은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싸워도 알아서 화해해야 하며, 책 읽다 읽다 지쳐 토론하기에 다다르고, 시리즈를 누가 빨리 읽나 경쟁하기도 하며, 축구를 하다 지쳐서 브이로그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심지어 어느 날은 입으로 내는 의성어, 의태어 대결을 누가 누가 잘하나 시합을 하기도 했고, (총소리, 칼소리, 굴러 떨어지는 소리 등) 세 아이 모두 개인기를 하나씩 연마하기도 했다.(우리 집에는 동물이 세 마리 산다 : 소, 오리, 돼지)
세 아이가 무료함과 싸우는 와중에 나와 남편은 그래도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노력했다. 일하다 와서 좋은 재료를 씻고, 조리하고, 내어주는 것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김밥과 떡볶이의 은혜를 가끔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하루에 세 끼니를 만들어 먹고 그 시간에는 깔깔대며 서로를 향해 웃었다. 늦은 저녁에는 조용하게 책을 읽다 가끔 보드게임도 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천천히 쌓았다.
아이들에게는 방학의 하루하루가 무료함과 싸우는 전쟁이었고, 남편과 나에게는 지극한 일상이자 끼니와의 전쟁이었다.
남편과 끼니와의 전쟁에서 겨우 승리했다며 쓴웃음을 짓긴 했으나, 사실 돌아보니 그 시간이 내 행복이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모든 시간이 나의 겨울 방학이었다. 아이들은 크고 나서 겨울방학은 ‘지루했어, 너무 추웠지.’ 등의 희미한 감상이 남을 테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선명한 그 시간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우리 집에 오랜만에 놀러 온 사촌언니가 우리 둘째에게 “엄마 닮아서 예민한가?”라는 농담 어린 말을 던졌을 때 “우리 엄마 예민해요? 아닌데. 엄마는 항상 친절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예쁜 말을 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맙고, 그 시간을 차곡차곡 성실히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