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 1부 말의 탄생, 산과 바다를 넘어

by 달밍


* KBS특별기획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1부 말의 탄생, 산과 바다를 넘어>를 보고



‘시초(始初)’라는 단어에서는 왠지 모르게 늘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겨 나온다. 무언가의 ‘맨 처음’을 파헤쳐 내는 일.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진 기나긴 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이 동반하는 필연적인 불가해함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우주의 시초, 생명의 시초, 인류의 시초 따위 같은 말들이 그렇다. 모든 것들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밝혀내어 그 나름의 일대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오랜 습성은, 알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시초’들에 오묘한 느낌을 덧입혀오고 있다. ‘언어의 시초’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퍼져나갔으며 어떠한 변화를 겪은 끝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가.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의 말, 즉 한국어는 도대체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른 이러한 궁금증들은 언어 계통 연구의 기반이 되어왔다.


몸속 어딘가에 연구자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으나,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사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큰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의문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면 어느 정도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텐데. 너무도 익숙하고 가까워서 오히려 날카로운 질문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던 걸까. 모국어라는 옷을 입고 있는 한국어는 나에게 궁금증의 대상이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으른 나와는 달리, 부지런한 우리의 연구자들은 국어의 시초를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하여 이 영상에서는 인간이 왜 다른 동물들과 달리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인류가 대규모 언어 집단을 이루게 된 과정과 어족 연구의 시작, 한국어의 계통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까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영상에서 다루었던 대부분의 내용들이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바로 말의 근원을 찾는 방법이 단순히 언어 그 자체를 분석하는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말은 과연 북쪽의 사람들로부터 내려온 것인가, 아니면 남쪽의 사람들로부터 흘러온 것인가?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하여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언어들 간의 비교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요소들을 동원하고 있었다. 선조들의 아주 오래된 사냥도구와 몸속 깊은 곳에 숨어서 질병에 관여하고 있는 유전형질, 서로 다른 신화의 유형, 그리고 쌀농사라는 새로운 생활양식까지. 우리 언어의 기원을 밝혀줄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많은 증거들은 의외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들 속에 숨어 있었다. 이는 ‘언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서 우리 생활 전반의 것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시 시켜 주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의 증거들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학자들 또한 각자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열심히 피력하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명확한 정답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아주 우연하고 사소한 돌연변이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오랜 언어, 그리고 그 길고 긴 역사의 흔적을 조심스레 따라가고 있는 21세기의 인류만이 여기에 존재한다. 지금까지도 광활한 땅 위를 전전하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언어들의 뒤를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일생에 단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을 우리말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녹음기에 귀를 가져다대는 이들이 있다. 언어라는 무한의 바다에 막 몸을 담근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보다 넓은 시각을 기르는 일과 모호함을 견디는 힘의 중요성을 되새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