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늦깎이 직장생활의 시작

왜 경영지원 일을 시작했는가?

by 나무코치


(20대 초반 알바포함 수많은 일들은 일단 건너 뛰고...)


전문대 졸업 후 유치원교사,

회계자격증 취득 후 세무사무실 잠깐,


그 후 서른살까지 사회에 적응 못하고 또 다시 수많은 알바에 전전긍긍 하고 살았던 나.


2015년, 30살 나이에 그 해 가을 시작한 알바는 어느 IT회사의 사무보조 알바였다. 이력서를 냈더니 전화가 왔고 "진짜 일 하실 생각인거죠?"라는 말을 하길래 황당해서 "네 맞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일 안할건데 왜 알바지원을 하나? 싶었기 때문이다.


면접 후 석달 단기로 일하게 되었고 사무실 분위기는 그동안 내가 겪은 일터와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개발하는 사람들(프로그래머)이 있는 그 회사는 조용하며 답답했다.


'누가 시비라도 걸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달 쯤 말도 없이 숨막히게 단순 사무일을 하며 지냈더니 어느새 적응했다. 그리고 회사사람들과 어느덧 하루에 한 두마디라도 나누게 되었다. 많은 말이 오가지 않는데도,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대다수가 개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딱 한 사람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주로 행정업무를 하고 법인카드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 사람이 이상하게 좋았다. 그냥 물흐르듯 있다보니 그 사람은 '나랑 동갑인 여자'라는 정보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나는 개발하는 사람들과 지내며 나도 프로그래밍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랑 동갑인 여자'의 일도 관심이 갔다. 개발하는 사람들은 맨날 늦게 퇴근하고 늦게 출근했는데 '나랑 동갑인 여자'는 비교적 다른 직장인들 처럼 9시-18시 근무를 했고, 나랑 사무실에 둘이 있을 때가 꽤 많았다.


가끔씩 그녀와 출근인사 하며 한 두마디씩 섞을 수 있었는데, 그녀는 나랑 같은 회계자격증이 있었다. (사실 내가 자격증 급이 더 높긴 했다. 그녀는 2급, 나는 1급 이런식으로..) 나는 회사에서 그녀가 하는 일들을 하고 싶어졌다. 나는 이 알바를 하며 나의 진로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녀가 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 곳에서 나의 계약기간은 그해 12월 말일까지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 올 무렵, 나를 관리하던 이사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디어문님, 회사가 12월 24일까지만 일하고 1월 1일까지 전체직원 셧다운에 들어갈거예요. 이번 달 월급은 31일까지 다 해드릴테니 내일까지만 나오시면 되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이상하게 서운했다.


"네?!! 내일까지 일하는 걸 지금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이사님은 계약기간 돈을 다 준다는데 (일주일의 유급휴가인 샘이다.) 내가 화들짝 놀라서 말하는 걸 보고 황당하셨으리라. (공짜 싫어하나?)


공짜.. 매우 좋아하지만 아마 그 사람들과 헤어지는게 싫어서 그랬을 것 같다. 다들 말도 별로 없고 일에 찌들어 힘들어보이긴 했지만 모두가 정규직인데도 불구하고 혼자 알바였던 나를 은근하게 아무런 위계질서 없이 챙겨주었다.


그들이 부리지도 않는 권위를 나 혼자 스스로 만들어 느꼈고 그래서 더 어려워했나보다. 그런 알 수 없는 따뜻함 때문에 나는 마지막 퇴근을 하던 그 날, 치울 것도 없는 자리 정리를 시간과 공을 들여 아주 오랫동안 했고 이상하게 밍기적 거리다 매우 늦게 그 곳을 나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이상하게 슬펐다.


다음 날 부터 '개발하는 사람들'이 있는 회사를 찾아 지원했다. 며칠 뒤 면접제의를 해준 회사에 면접을 갔다.


알바했던 회사와는 다르게 나이가 좀 있어보이는 대표님과 따뜻한 얼굴에 차장님이 면접을 진행하셨다. 대표님의 질문 중 "파워포인트 잘해요?"라는 말에 "아니오, 잘은 못해요" 라고 대답했다. 작년에 알바로 입사했던 회사에서는 PPT, 엑셀 등등 다 잘한다고 말했다가 출근 첫 날 대표님이 "디어문씨는 파워포인트도 잘하고 엑셀도 잘한다니 부탁할 거 있으면 다들 부탁해요." 라고 소개하셔서 하루만에 퇴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ㅋㅋㅋ (아주 못하진 않는데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는다.)


"엑셀은 잘해요?" 역시나 같은 대답을 했다.


못한다고 한게 많으니 그냥 마음 비우고 집에서 딩굴거리는데, 문자가 왔다.


"경영기획팀, 사원, 연봉XXXX만원(그당시 최저임금). 1월 2일부터 출근. 괜찮으시면 답장 주세요."


알바하던 회사에서 준 일주일의 유급휴가 기간에 나는 운좋게 내가 바라던 '개발하는 사람들'이 5명 있는 회사에 '나랑 동갑인 여자'가 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016년 1월, 그때 나는 서른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