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회사 첫 출근 날

31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던 첫 날 이야기

by 나무코치

추운 겨울 1월 2일.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알바 포함 10번도 넘게 첫 출근을 해봤으나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는건 정말 처음이었다. 31살이 되도록 남들이 취업했다고 기뻐하는 모습에 이해가 안갔었는데 이제야 그 기쁨을 느낀다는 게 신기했다.


유치원 면접을 보고 근무할 첫 유치원을 확정 지었던 날도 이상하게 마음이 내키지 않고 불안하다며 친구와 술을 마셨고 다른 곳들도 면접을 보고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그다지 기쁘지 않았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오늘 첫 출근 했는데요."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환영.. 이것도 너무 이상했다. 그 동안 10번 넘게 첫 출근을 하면서도 이런 환영은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처음 온 나를 낯설어 했고 어디서든 스스로 혼자 적응해야 했었다.


한 분이 나의 자리를 안내해주었고 직원들 한 명 한 명이 파티션 너머, 혹은 내 자리로 찾아와 "저는 무슨 일을 하는 누구누구 입니다." 라며 명함을 건내주었다. 모두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인사를 해주었기에 나는 그 상황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맡아야 했던 일들을 그 동안 서로가 나눠서 하는 것에 대한 해방이라는 생각에 기뻐서 나를 맞이하는게 직원들은 행복했을까, 싶지만 2년 넘게 그들과 지내보며 그들에게 느낀 점은 정말 순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불편한 업무에 대한 해방이든 진짜 나를 진심으로 반겨준 것이든 상관없이 떠나온지 4년이 넘은 지금도 문득 그들이 그러워지곤 한다.


나의 면접을 진행하셨던 차장님이 안계셨는데 다른 직원이 '차장님은 오늘은 안나오시고 내일 나오실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출근하자마자 주어진 일은 대표님 자리에 있는 컵과 탕비실에 있는 1개의 컵, 티스푼, 쟁반을 설거지하는 일이었다.


막내업무..

나는 어디서든 막내업무를 맡았었기에 주어진 일에 자신이 있었다.


내 자리는 대표님 자리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다들 자리가 별로인데 괜찮냐고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컴퓨터가 새 컴퓨터라 윈도우 설치가 안되어있었고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도 연결해야했다. 설치를 도와주겠다며 남자직원분이 오셨는데 나는 pc방 알바도 해봤었고 어릴 적 포맷이나 윈도우설치를 매우 많이 해봤기에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윈도우설치디스크만 부탁드렸다. 차장님도 없고 뭘 해야할지 몰랐었는데 pc 세팅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컴퓨터를 좀 알다보니 컴퓨터 사양을 확인했는데, 헉~ 엄청난 고사양이었다. 그 동안 일하던 곳에선 거의 다 구닥다리 pc를 업무용으로 받았었는데 사무용치고는 엄청난 고사양에 감동하여 정말 행복했다. (그 당시 꽤 비싼 가격이었다.) 개발자 한분이 나보고 컴퓨터를 좀 아냐며 물었고 그냥 조금 다룰줄 안다고 했다. 바로직전 알바하던 '개발하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입사하는 직원에게 가격에 상관없이 원하는 업무장비를 사주는 것을 보며 정말 부러웠었는데 나는 개발하는 사람도 아닌데 좋은 pc를 쓰게되어 회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새pc를 받은 일터도 처음이라 그저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회사에서 그 pc를 사야만하는 이유가 있었고 다른 pc는 줄 게 없어서 새pc를 주다보니 그걸 내가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직원 한 명이 앞으로 내가 관리할 것이라며 법인카드를 주었다.


'법인카드'...

개발하는 사람들이 있던 곳에 나랑 동갑인 여자가 관리하던 그 일.

그 곳에서 개발하는 사람들이 밥먹으러 갈때마다 서로에게 챙겼냐고 물어보던 그 것.

법인카드를 처음 손에 쥐어 본 나는 내색은 안했지만 정말 기뻤다.


pc세팅을 하다보니 면접 때 만났던 대표님이 출근하셔서 인사드렸다. "어~" 라며 시크하게 인사하시고 대표님 자리로 가셨다.


그 날은 나 말고도 경력직 개발자 1명, 그리고 나이가 좀 있으신 고경력 고문님 한 분이 같이 입사했다. 새로 사람이 들어온 게 2년만이라고 직원들이 알려주었다.


사무실을 반으로 가른 중간 파티션을 기준으로 내 자리 쪽엔 대표님과 나의 자리, 그리고 차장님의 자리가 있었고 나머지 절반 위치엔 6명의 연구원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이 곳에선 개발자와 엔지니어를 연구원으로 불렀다.


점심시간은 12시20분부터였다. '점심시간 희한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직장인이 잔뜩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점심시간 웨이팅을 피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점심먹으러 회사사람들이 가는 구내식당으로 다 같이 5분정도 걸었다. 연구원 중에 여자 연구원 1명이 있었는데 나에게 이런저런 말도 걸어주며 살갑게 대해주었다. 구내식당 이야기도 해주고 회사 이야기도 해주고 나에 대해 물어봐주기도해서 정말 좋았고 고마웠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오후엔 특별히 뭘 해야할지 몰라 책상에 있던 업무관련 자료도 살펴보고 연구원들을 조심스레 관찰해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표님이 "10명 될 때까진 입사자 환영회를 하자"라며 회식을 제안하셨고 그 날 퇴근 후 직원들과 다같이 회식을 했다. 가벼운 맥주와 함께 직원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는 정말 즐거웠고 사람들은 내가 활발하다고 말해주었다. 활발하다는 말을 들은 것도 오랜만이라 조금 어색했다. 회식자리에서 나는 오전에 받은 법인카드로 회식비를 결제하고 영수증을 꼼꼼히 챙겼다.


나는 회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개발하는 사람들도 있고

법인카드 관리하는 일도 할 수 있고

내가 사용하는 업무용 pc도 너무 좋고

사람들도 너무 좋았다.


더이상 알바로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도 좋았다. 정규직.. 회사원.. 동료들과 회식.. 나에게도 이런 운명이 있었다니.


내가 사람들을 위해 뭘 해야할지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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