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회사의 수습기간

이상하게 즐거워서 자의적 야근을 일삼던 3개월

by 나무코치

면접 때 만났던 차장님께선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로 업무를 봐주고 계셨다. 회사 규모가 작다보니 차장급 경영지원 관리자가 풀타임으로 필요하지 않았기에 작은 돈을 받으시며 재택근무로 회계관리 업무를 해주고 계셨다. 그럼에도 사무실에 차장님 자리가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출근하셔서 업무를 보시는 것 같았다.


2달 정도의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차장님을 만나며 업무를 배웠다. 차장님은 내가 해야할 일들을 속성으로 교육해주셨다.


- 정부과제 사업비시스템에 사용내역 입력

- 정부지원사업 서칭 및 신청

- 법인계좌 및 법인카드 사용내역 관리

- 직원 연차 관리

- 세무사무소와의 협업

- 비품, 소모품 관리 및 구매 업무

- 사무실 유지를 위한 전반적인 관리

- 기타 대표님이 시키는 업무(이건 배운 건 아니다.)


2달간 배웠다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오전시간 정도 뵙는 거다보니 깊이있게 배우진 못했다. 모르는 건 언제든 물어보라고 하셨지만 거의 집에 계시는 분께 연락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주로 거래처에 묻거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해결했다. 그렇게 차장님은 나와 함께 2달 정도 지내시고 자격증 공부를 위해 회사를 떠나셨다. 나는 차장님이 쓰시던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유치원 교사 퇴직 이후로 미쳐 날 뛰고 있었고 거의 알바만 해봤기 때문에 나는 그야말로 날 것(raw)의 느낌이 나는 직장인이었다. 직장인으로써의 기본 군기가 없어서 생각없이 말하는 일이 많았고... 지금은 더 심하다.(경력이 쌓였는데 대체 왜?) 처음엔 그런 나를 보며 신선한지 직원들이 웃어줬고 대표님은 욕을 한 바가지씩 하셨는데 나중엔 직원들도 좀 절레절레 하는 것 같았다.


회사는 인원이 6명정도 였기에 야근을 하지 않는 직원도 회사돈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회사밥으로 먹는 저녁이 이상하게도 좋았기에 나는 거의 매일 회사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야근도 했다.


이상하게 일이 재미있었다. 야근까지 할 필요도 없었는데 늦게까지 회사에 홀로 남아 일한 적도 꽤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때 야근하며 대체 뭘 그리 일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난 야근하는게 싫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밤 11시쯤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가 엄마 옆에 있는 침대에 철푸덕 쓰러지며 "아이고 힘들다~"라고 말하며 바쁜 직장인 코스프레를 하는 걸 좀 즐겼던 것 같다. (어쨌든 회사에서 노느라 늦게 들어간 건 아니긴 했다.)


그런데 야근까지 해가며 일하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 보고서 등의 문서에도 문장에 직장인 느낌이 나지 않았고 오타도 가끔씩 있었다. 대표님이 나의 문서를 보며 지적하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화를 내시기도 했다. 종종 대표님 자리에 불려가 혼나곤 했는데 작은 사무실에서 내가 혼날 때 다른 직원들도 숨을 죽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깨지던 어느 날 대표님이 나에게 "너는 머리를 못 박으려고 들고다니냐?"라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보기에도 내가 한 실수가 어이 없었던지 "네, 그런가봅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며 대표님 책상에 머리로 못을 박는 시늉을 했다. 그 행동을 했더니 대표님이 좀 누그러지셨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나왔는데 여자 연구원 분이 메신저로 괜찮냐고 물어봐주셨다. 함께 사무실 밖에 나가 상황을 설명하며 "난 정말 괜찮아요~ 방금 상황은 대표님도 좀 웃으셨어요~" 그랬더니 연구원 분이 이해를 잘 못하셨다. 나중에 거의 모든 직원에게 듣기로는 대표님이 지금은 많이 온순해 지신 편이라며, 예전엔 정말 살벌하게 무서운 분이셨다고 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정규직으로 입사 후엔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친다.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고 실제로 근로계약서도 쓴 기억이 없었다. 입사 후 한 달 뒤 쯤인가, 차장님이 근로계약서 업무를 알려주시며 내 계약서도 작성하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 때 포괄임금제 계산법을 한 번의 설명으로 들었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포괄임금제 업무는 지금도 어렵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헷갈린다. 절대 신입이 계산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때 3개월 수습기간의 존재를 알았고 수습직원 평가서라는 문서도 알게 되었다.


후덜덜... 3개월 동안은 정규직이어도 정규직이 아닌거구나.


입사한지 2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나와 같은 날 입사한 대리급 개발자가 수습기간 내에 해고(?)*를 통보 받았다. 이런 장면 태어나서 완전 처음!이라 쇼킹에 쇼킹했다. 그 분은 아침에 짐을 싸서 떠나셨고, 소프트웨어팀 책임연구원 분이 회의실에 모두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셨다. 나는 충격으로 온몸이 얼어붙어 그 상황에서 전자결재가 어떠느니 하며 실없는 소리를 꽤나 했던 것 같다. 나도 이번 달 내로 충분히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 표현을 해고로 하긴 했지만 사실상 해고라기보다 서로간의 협의하에 퇴직이 이루어졌다.


충격의 경험을 겪기도 했고 2달이 지나니 업무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그래서인지 실수가 줄어들었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신입답지 않게 업무를 알아서, 찾아서 해냈던 것 같다.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고 연구원들의 단순 업무도 도와줬다.


수습기간이 끝나기 일주일 전, 대표님이 나를 자리로 부르셨다.


"우리회사 연봉테이블이야. 앞으로 급여업무 맡으면 돼."

"네, 알겠습니다."


일어서서 대표님 모니터를 보니 잘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엑셀파일을 넘겨주실거라 생각했다.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대표님께서


"그리고, 다음 달부터 네 연봉을 조금 올려줄거야. 널 키워보고 싶어."


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서야 대표님 모니터 내용을 눈에 불을 켜고 봤고 깜짝 놀랐다. 대표님 말씀을 글로 적으니 뭔가 쪼금 느끼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권위적으로 말씀하셨기에 '키운다'라는 말에 듣는 나로썬 엄청난 기쁨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를 세 번이나 말하며 인사드렸다.


최저임금으로 시작한 나의 연봉이 3개월 만에 올랐다. 인상률이 20%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최저임금 연봉이 워낙 적었던 시절이라 20%여도 크게 오른 건... 아닌게 아닌가? 여튼 2016년 최저임금에 20% 해봐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어디서도 최저임금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이런 기쁨과 성장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수습기간 종료가 하루 이틀 남은 시점에 회식자리에서 큰 사고를 쳤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내가그냥 못나서 그랬던 것 같다. 사고가 꽤 컸는데 너무 민망해서 글로도 쓸 수가 없다. 내용을 쓸 수도 없으면서 그 때 내가 사고치던 현장에 함께 있었던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그 직원분들이 이 글을 볼리가 없지만....ㅠㅠ)


'아.......... 나는 역시 직장인으로는 못 살려나봐. 정규직 경험 한 번 해본 샘 치자.'

스스로 수습기간 통과를 포기하며 정신줄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런 사고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인지 정말 모르겠지만..... 3개월을 넘기고 4개월차를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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