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타트업 경영지원이 하는 일들
정말 희한한 보직, 스타트업 경영지원
31살에 첫 회사에 취업한 나는 지금까지 5년 동안 스타트업이라 불리면서도 직원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만 일했다. 스타트업 특성상 체계가 거의 없다 보니 상사가 있어도 사수는 아니었고 부하직원이 있어도 협업할 만한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적는 글은 직원 규모 15명 이하 기준의 스타트업 경영지원 이야기이다.
스타트업 경영지원은 어떤 일을 할까? 직전 회사에서 업무분장표를 스스로 작성해 봤을 때 업무의 개수가 130개 정도였다. 지금 회사에서도 궁금해서 업무분장표를 작성해보니 60개 정도였다. 지금은 회사의 주인이신 대표님과 이사님이 나와 경영지원을 분담하시기 때문에 회계 비중이 높아졌고 이제야 조금은 전문성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직전 회사보다 일의 가짓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어쨌든 130가지를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일 자체는 자잘한 일들이긴 하다. 그래도 참 많은 일을 하는 부서이다. 근데도 바쁠 때는 바쁘고 한가할 때는 희한하게 한가해 시간이 남는 아주 그냥 희한한 보직이다.
이러한 일들을 크게 분류하면 보통 경영지원은 회계, 경리, 총무, 인사(급여, 연차, 노무), 정부지원사업, 법무 정도이다. 이 중 '총무'는 그야말로 갔다 붙이면 다 총무가 해야 할 일이다 보니 업무분장표에 작성할 수 없는 일도 꽤나 있다. 예전에 어떤 글을 읽었는데, 어느 회사의 어떤 부서의 과장이 신입사원에게 '총무부에 형광등 갈아야 한다고 전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신입사원은 총무부 과장에게 '우리 과장님이 형광등 갈아달라는데요.'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 신입사원은 양쪽 과장에게 혼났다곤 하는데 웃기면서도 씁쓸한 이 이야기는 총무일을 하는 나에게 꽤나 서글프게 다가왔었다.
회계일을 할 때면 '이렇게 어려운 일이면 세무사나 회계사를 딸 걸', 급여나 연차 관련 공부를 할 때면 '이럴 거면 노무사를 딸 걸', 요즘처럼 법무 관련해서 준비할 때면 '이럴 거면 법무사나 딸 걸.'이란 생각을 수 백번도 넘게 했다.
스타트업 경영지원이 이렇게나 다양한 일들을 하는데 노무사, 세무사, 회계사, 법무사만큼의 지식을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다. 저런 지식 다 있으면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를 하지, 스타트업에서 경영지원을 하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일을 다 소화해내고 싶은 욕심에 꽤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잦은 번아웃에 시달렸다. 결국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니다. 이제는 그냥 어느 정도 얕은 지식들이 있으니 그때그때 찾아본다. 근데도 이노무 법들은 예전에 봤던 것도 처음 보는 것처럼 항상 새롭다.
이렇게 많은 가짓수의 일을 감당하다 보니 전문성이 길러질 리가 없다. 특히 직원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은 회계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자체 기장을 한다 해도 회계만 하기엔 풀타임으로 쓸 필요가 없을 정도다. 경력이 좀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출근해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정도라 하겠다. 그런데 대체로 외주 기장을 맡긴다. 이런 이유로 더욱더 회계 비중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경영지원'이라는 이름하에 인사 쪼끔, 총무쪼끔, 정부지원사업, 회계쪼끔, 자금 경리 쪼끔, 가끔씩 발생하는 법무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노무나 법무는 아웃소싱을 하지만 담당자가 너무 몰라도 아웃소싱 거래처 응대하기가 힘들다. 나중에 사업을 할 생각으로 이것저것 배우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직장생활 좀 오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경영지원으로 시작해서 커리어 만드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만약 취업준비생이라면 취업이 너무 안돼서 20명 이하의 스타트업 경영지원에 지원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커리어를 키운다기보단 회사가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인턴십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경영지원은 사수를 바라기 힘들다. 같은 부서에 선배 직원이 있다 해도 일을 배우면서 할 수 있다기보단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배정할 것이다.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1년 뒤엔 전공을 살리던 규모를 확장해서 다시 신입으로 이직을 해야 한다. 그 사이에 회사가 커서 회계 시니어가 들어와 회계일을 전문적으로 배우며 나머지 분야(노무, 총무, 법무..)를 해나가며 성장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과연 그게 옳은 선택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경력이 4년 조금 넘은 시점이었던 올해 초 나의 커리어를 돌아보니 커리어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회계도 인사도 너무 약했다. 회계는 위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그렇게 일이 많지 않아 전문성을 기르기가 어렵다. 그리고 나는 인사업무를 제도 쪽으로 1년 정도 했다. 경영학에서 배운 인사를 조금 제대로 해보고 싶었고 직전 회사에서 그럴 기회가 있었다. 경영지원으로 입사했지만 대표님이 인사에 관심이 많아 인사업무를 할 수 있었다. 1년 동안 20가지 넘는 제도를 기획하고 회사에 적용했다. 소기업이다 보니 선배 직원이랑 한 인사업무가 아니었고 대표님과 둘이서 내가 조사한 내용들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1년 뒤 돌아보니 내가 한 인사는 직원들을 위한 인사가 아닌 오로지 회사를 위한 인사였음에 좌절했다. 그 후 "경영지원이 인사 업무를 하는 회사는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글을 어디서 보고 깊은 공감을 했다.
인사(HR)는 경영지원이 아니다. 인사에는 노무, 제도, 조직문화, 채용, 교육 등등 많은 분야가 있는데 스타트업에선 이를 경영지원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사는 경영지원과 협업 포인트가 상당하고 '내부관리'라는 점에서 겹쳐지는 부분이 있지만 경영지원은 그야말로 경영진을 서포트하는 부서이고 HR은 직원을 위한 일을 하는 부서이다. 색도 다르고 결도 다르다. 많은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경영지원에 인사업무를 겸하게 하는데 그나마 경영지원이 할 수 있는 인사업무는 '노무'정도다. 숫자와 법을 포함하는 일이다 보니 회계랑 그나마 성격이 맞다. 이 이상의 인사업무를 경영지원에게 맡긴다는 건 '인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표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커리어 이야기하다가 잠시 HR 이야기로 이야기가 새 버렸지만 어쨌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적어봤다. 경영지원을 오래 하고 인사로 넘어가긴 어렵지만 그래도 1년 정도 경력이라면 인사업무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안 되진 않을 것 같다. 만약 당신이 어쩔 수 없이 스타트업에서 경영지원으로 잠시 몸 담아야 한다면 최대한 빠른 시기에 조금 더 큰 규모의 회사에 인사나 회계로 포지션을 확실히 잡아 이직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 조금 더 큰 규모에는 당연히 당신을 이끌어줄 선배 직원이 있어야 만한다. 그래야 커리어를 키워나갈 수 있다.
인사와 회계가 결이 다르듯이 사실 총무와 회계도 결이 다르다. 물론 총무와 회계는 겹치는 업무가 있긴 하다. 그러나 총무와 회계는 인사와 회계처럼 머리 쓰는 회로가 꽤 다르다 보니 잦은 현타가 올 수밖에 없다. 가짓수 많은 업무들은 집중을 방해한다. 경영지원에게 말은 거창하게 제너럴리스트라고 하지만 집중과 몰입이 어려운 보직이다.
위에도 잠깐 말했지만 일의 가짓수가 많아도 시간이 남는 희한한 보직이기 때문에 쉽사리 인원을 늘리기도 힘들고 연봉을 올리기도 힘들다. 자잘한 업무가 많다 보니 실적이라 할만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회계나 급여는 꽤나 중요하다 보니 사무보조 알바에게 맡기기도 어려운, 정말 희한한 보직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안 업무를 때려 넣은 보직이라 나름 중요한 보안 업무를 하다 보니 타 직무와 섞이기도 쉽지 않다. 제품/서비스를 빛내기 위해 일하는 직원들과 겹치는 대화 포인트도 없고 내 업무에 대한 고민을 말할 사람은 대표님 정도인데 스타트업 대표님들은 잠잘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다. 나름 대표님과 가깝게 일하는 보직이다 보니 더욱 업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고 바빠 보이는 사람한테 그다지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취업이 어려운 나이, 저스펙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3번이나 이직을 했나 보다.
스타트업 경영지원러로서 희망을 주고 싶은데 단점만 가득 적은 것 같다. 쉽지 않은 일 맞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사실 경영지원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잡다한 일, 하기 싫은 일을 꽤나 한다. 뭐 대기업이라고 안 하겠냐만은 스타트업은 특히 그렇다. 그 와중에 경영지원은 업무 가짓수가 많다 보니 무언가 가슴 뛰는 일을 경험하기 힘든 안타까운 직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이러한 악조건에서 이 일을 아직도 하는 이유는 우선 현실적으로 내가 시작을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시작했던 점, 그리고 지금도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하고 있는 점, 좀 있으면 서른일곱인데 경력은 5년밖에 안 되는 현실적인 부분이 상당하다. 나의 조건 또한 악조건이기에 지금 와서 커리어를 다져간다는 것은 이제는 사실상 어렵다. 커리어라는 단어에 눈을 뜨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지만 나의 악조건으로 인한 현실의 벽이 높아 더는 무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내가 너무 죽을 것 같아서 으으.. 일단 숨은 쉬어야겠기에..ㅋㅋ) 그리고 돌아보니 내가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스스로 인정했다.
다만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나를 믿고 이 자리를 내어주었기에 나의 커리어, 나의 직장인의 미래보단 그저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면서 경영지원이라는 이 서포터의 역할을 내 나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제품 서비스를 빛나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그저 큰 욕심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이 회사와 직원분들에게 의미가 있고 그 의미가 우리 회사 고객들에게 이어지길 바라면서. 우리 회사 제품이 많이 팔려 세상에 있는 문제를 일부 해결하길 바라면서. 이 마음이 경영지원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기 때문에 그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날까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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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짓수는 많은데 시간이 남는 희한한 보직"이라는 말을 많이 해서 괜히 찝찝해서 여담을 적자면,
경영지원러가 시간이 남을 때는
1. 바쁠 때 제대로 정리 못한 일을 정리하거나
2. 업무에 필요한 커뮤니티를 좀 본다거나 (인사카페, 회계카페, 기업마당 등등)
3. 사무실 둘러보면서 필요한 것들 있나 살펴보거나
4. 좀 쉬면 된다. (총무 일은 쉬면서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너무 바쁘면 정작 사무실에 필요한 것들, 직원들이 필요한 것들을 놓친다. 총무일은 좀 노는 느낌으로 하면 좋다. 그리고 직원들이 요청하는(재직증명서 등) 업무들도 불시에 많이 들어오다 보니 그런 업무를 대응할 때는 조금 여유가 있어야 친절하고 즐겁게 응대할 수 있다. 그러니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쉬자. 숨도 좀 골라야 계속 일 할 수 있지 않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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