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하지 않는다. 이기거나 배우거나 둘 중 하나다.

넬슨 만델라

by 달여울 작가

넬슨 만델라는 1940~5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변호사이자 흑인 해방 운동가로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남아공은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으로 흑인 다수는 기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만델라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서 지도자로 성장하며 불평등과 차별에 맞섰습니다. 그러나 1962년 그는 무장투쟁 혐의로 체포되었고,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로벤섬 감옥에서 27년간이나 수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체제의 적으로 낙인찍혔고, 외부와 단절된 채 굴욕적인 강제노동과 혹독한 감시 속에 청년 시절을 모두 잃어야 했습니다. “27년”이라는 시간은 개인 인생을 사실상 파괴하는 길이었고, 많은 이들이 만델라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옥의 현실은 비참했습니다. 좁디좁은 독방, 돌들을 부수는 강제노동, 가족과의 제한된 만남, 끊임없는 모욕들. 만델라는 종종 육체적·정신적 파탄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는 “나는 끝없는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것에 지배당한다면 내 영혼마저 빼앗길 것을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외부 세계에서도 그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백인 지배층과 보수 언론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고, 국제사회조차도 초기에는 냉담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 사회에서 ‘만델라 석방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 갇혀 있지만 전 세계에 저항과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습니다.


만델라는 출옥 이후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서 감옥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내 감정은 자유롭지 않았고, 내 몸은 쇠창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내 정신만큼은 자유롭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는 증오를 버렸다. 증오는 감옥을 떠난 후에도 나를 여전히 가두는 족쇄일 뿐이었다.”


이 회고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그의 내적 싸움의 기록이었습니다.


만델라는 감옥에서 단순히 버티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가르치고, 토론을 열어 ‘감옥 대학’이라고 불릴 만큼의 지적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는 감옥 안에서도 배우고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점점 더 관용과 화해의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백인 정권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대신, 언젠가 찾아올 화해의 날을 준비했습니다.


1990년, 국제사회의 압력과 내부 저항으로 결국 그는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서 과거의 범죄를 드러내되, 복수보다는 치유와 통합을 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델라는 단순히 한 나라의 지도자를 넘어, 세계사 속에서 용서와 화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만델라의 삶을 지탱한 것은 그가 자주 인용한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 “나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나는 이기거나, 배우거나 둘 중 하나다.”


이 말은 감옥 안에서의 27년을 지탱하게 해 준 그의 신념이자, 남아공 사회를 새로운 평화와 화합의 길로 이끈 철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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