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보물찾기
바젤 미술관(Kunstmuseum Basel)은 매월 첫째 일요일에 상설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우리에게 친숙한 오귀스트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만날 수 있어요.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에게 포위된 칼레 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려 했던 6명의 시민을 묘사한 실물 크기 이상의 청동 조각상입니다.
당시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도시 전체를 몰살하려다, 지도층 인사 6명이 직접 목에 밧줄을 매고 나와 공개 처형을 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때 부유한 귀족들이 자원했고, 이들의 숭고한 마음에 감동한 영국 왕비의 간청으로 6명 모두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고 하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바젤뿐만 아니라 코펜하겐, 런던, 일본 등 전 세계 12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삼성문화재단도 소장하고 있는데, 현재는 호암미술관 수장고에 있다고 하네요. 로댕의 작품은 여러 에디션을 제작했기에 ‘생각하는 사람’처럼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바젤 미술관에는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아놀드 뵈클린(Arnold Böcklin),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 거장들의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풍부합니다. 그중에서도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피터르 더 호흐(Pieter de Hooch)의 그림이었습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와 화법이 매우 비슷해서 착각하기 쉬운데요, 두 사람 모두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동하며 풍속화를 그린 거장들입니다.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도 베르메르의 것인 줄 알았을 정도니까요. 굳이 구분하자면, 이곳에서 만난 그림처럼 피터르 더 호흐는 방 안과 밖(열린 문이나 복도)을 연결하는 일상을 주로 그렸고, 베르메르는 조금 더 정적인 실내의 빛에 집중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7가지 자비로운 행위(The Seven Works of Mercy)’라는 그림도 인상적입니다. 이 주제는 카라바조(Caravaggio)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바젤에서 만난 그림은 전혀 다른 분위기죠. 네덜란드 라익스뮤지엄에 있는 동명의 작품과도 다른 분위기입니다. 바젤 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은 바로 프랑스 프랑켄 2세(Frans II Francken)의 그림입니다. 앞선 작품들보다 훨씬 풍속화 같은 느낌이 강한데, 특히 빵을 받아먹는 사람의 표정이 시선을 강탈하네요.
한스 베르팅어(Hans Wertinger)의 ‘포도 수확과 와인 제조(9월)’는 와인 수확철의 분주함을 담고 있습니다. 모두가 바쁘게 일하는데 딱 한 사람만이 이래라저래라 지시만 하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월급쟁이인 제 처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지시만 하는 사람은 늘 있네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는 사람 또 있습니다. 바로 의심 많은 사람이에요. 얀 브뤼헐(Jan Brueghel)의 ‘세례 요한의 설교’를 보면 멀찍이 떨어져 쑥덕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짝다리를 짚고 손가락질하며 흉을 보는 듯한 모습, 무슨 말을 해도 의심하는 사람들의 딱 그 행태네요.
바로 그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는 검정머리 사람이 보이실까요. 만고불변의 진리 추가예요.
마지막은 그래도 스위스의 국민 화가 페르디난트 호들러(Ferdinand Hodler)의 작품 ‘상심한 영혼(Disappointed Souls)’입니다. 미술관 내 다른 공간에 같은 제목의 두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호들러가 불과 1년의 시차를 두고 표현해 낸 노인과 젊은이의 상심은, 그 깊이와 울림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노년의 상심은 배경이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표정도 다 드러나 있구요. 청년의 상심 배경은 꽃밭이네요. 찬란하고 푸르른 청년의 삶이어도 보여주지 않은 표정과 같이 불안한 미래로 상심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역시 국민 화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