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황 씨

2세들에게 가문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by 황현수

토론토 황 씨

어제가 파더스 데이(Father's day)였고, 그 며칠 전이 선친의 기일이었다. 우리 집안은 가톨릭이라 가정 제례보다 우선으로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성당을 갈 수 없어서 집에서 간단히 제례를 드렸다. 한국에 있는 남매들도 예년 같으면 성당에 모여 위령 미사를 드렸을 텐데, 이번에는 각자 집에서 제례를 드렸다고 한다. 이민을 먼저 온 친구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군데서 시간도 다르게 제사를 드리는데, 어떻게 돌아가신 분이 아실까?” 친구가 하는 말이, “걱정하지 마, 귀신 같이 알아서 찾아오신다. 그러니까, 귀신이지!”해서 한바탕 웃었다.

가톨릭에서는 가정 제례보다 성당에서 위령 미사를 권하고 있다.

나의 선친은 창원 황 씨다. 1999년 이민을 떠나기 전, 아들에게 창원을 보여주고 싶어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그곳에 특별히 연고도 없어서 시내 한 바퀴를 돌고 마침 창원 KBS에서 하고 있는 콘서트를 봤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으나, 조국을 떠나며 조상들에게 공연히 죄송스럽기도 하고 자식에게 그나마의 기억을 남겨 주고 싶어서였다.

황 씨(黃氏)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 분포하는 세계적인 성씨다. 중국에서는 성씨 인구 순위로 7위에 올라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5대 성씨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한국 황 씨의 연원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황 씨는 현재 중국, 한국, 베트남, 북미 지역에 6천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에는 68개의 본관과 70만여 명(2017년 기준)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는 본관은 평해(平海)·장수(長水)·창원(昌源) 3대 본관이 대부분이다. 창원 황 씨는 주로 영남 남해안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장수 황 씨는 주로 호남과 중부 지역, 평해 황 씨는 동해안과 영동 지역에 각각 거주하고 있다.

황 씨의 도시조(도시의 시조)는 신라 초기 중국에서 건너온 황락(黃洛)이다. 황락은 후한의 광무제 4년(서기 28년)에 교지국(交趾國·베트남)에 사신으로 가던 도중 풍랑으로 표류해 우리나라 동해안(경북 울진군)에 상륙하여 정착한다.

창원 황 씨는 황 씨 본관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이들은 황 씨의 도시조(都始祖)인 황락(黃洛)의 셋째 아들 황 병고(黃丙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황 병고가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지면서 창원 황 씨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세계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창원 황 씨에는 시조를 달리하는 8개 파가 있는데, 이들 분파 사이의 관계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내용이 없으며, 족보도 각기 따로 편찬하고 있다. 창원 황 씨는 조선시대 총 40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그중 내가 가장 기억하고픈 사람은 영조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黃嗣永)이다. 그는 천주교 순교자로 16세의 나이에 진사에 합격해 정조의 총애를 받는다. 그 후 정약용의 형 정약현의 딸과 혼인하며 신자가 되고, 정부의 박해를 중국에 전하는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당한다.

황사영은 한국 천주교의 초창기 인물로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순교한다.

현대의 인물로는 황우석 박사, 황인성 전 국무총리, 황산성 전 국회의원, 소설가 황순원, 북한에서 탈북 한 황장엽 등이 있다.

이곳 토론토에는 그리 알려진 황 씨가 없다. 지난 10년간의 신문 기록을 뒤져 그나마 찾아낸 황 씨가, 에밀리아 황이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이 되던 해 토론토에 왔다. 플루트를 전공해 음대에 진학, 요크대학에서 교사 과정을 밟았고, 토론토 교육청 교사가 되었다. 뛰어난 지도 능력으로 시범 수업을 자주 했던 황 교사는 토론토교육청에 스카우트돼 13년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청 음악교육 담당자로 자리를 옮긴다. 그녀가 하는 일은 토론토 학교들의 음악 교육과 관련된 기획 및 총괄이다.

그녀는 교육청 주관으로 매년 토론토 매시 홀에서 개최되는, 15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두 개의 콘서트를 기획 총괄한다. 음악회를 위해 토론토 전 지역에서 아이들을 모아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교육시킨다.

평소 한인 아이들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키워주고 싶었던 황 교사는 교육청에 자리 잡은 지 1년 만에 ‘사물놀이’ 교육 프로그램을 들여왔다. 자신도 배운 적 없는 악기들이었지만 ‘한국의 소울’이 담겨 있는 음악이라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1년에 8개 학교가 7주간 배우는데 한 학교당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250명까지 참여한다.

“한국어로 인사하고, 한국 교사가, 한국의 악기를, 한국의 영혼을 담아 전수해요. 한인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배우면서 아주 ‘으쓱’해합니다. 친구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면서 즐거워하죠. 그렇게 7주를 보내면 많은 아이들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한인 자녀들에게 자긍심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죠.”라고 말한다.

창원 황 씨 선산에 있는 비석

행동과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올바른 황 씨다. 아, 그런데 에밀리아 황은 여성이다.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이곳 제도이니 황 씨 가문이 아닐 수 있다. 그야말로 ‘말짱 황’인 이야길 이토록 오래 썼다.

2세들에게 대 놓고 가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구식이 되어버린 시대다. 그래도 먼 훈 날 ‘토론토 황 씨’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기록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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