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오기 전, 유럽 국가들은 왠지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울 거라고 느꼈다. 그 생각은 여기에 살며 조금씩 바뀌어, “국가마다 아이덴티티가 있고 그 차이가 또 다른 ‘급’을 만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 캐나다도 다양한 이민자들이 있지만 여전히 주도권은 유럽 출신 백인, 그중에서도 먼저 정착한 프랑스와 영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어서 이탈리아계도 아직 주류는 아니지만, 거기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탈리아 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이 영화 <대부>다. <대부>는 마피아의 범죄를 잔인하게 비추지만, 그들의 가정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대부’는 마피아 조직원에게는 ‘절대 군주’이어도 가족들에게는 그저 자상한 아버지일 뿐이다. 이 때문에 마피아의 조직범죄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평도 있지만, 어쨌든 이탈리안의 한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영화에서는 마피아가 같은 민족을 도와주는 장면이 가끔 나오는데, 특히 ‘마이웨이(My Way)’를 부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뒤를 봐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시나트라의 삶도 <마이웨이> 노래 가사처럼 ‘모든 길을 다 가봤고’ 많은 것을 겪는다. 그의 명성 뒤에는 마피아 폭력이 따라다녔다.
내가 1988년, 업무 차 로마에 갔을 때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다. “한국에서 성악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 모텔에서 첫날밤 새벽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어디선가 ‘산타루치아’ 노랫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청소부 아저씨만 있었다. ‘누가 아침부터 발성 연습을 하나’하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청소부 밖에 안 보였다. 그런데 잠시 뒤, 그가 빗자루를 쓸며 “산타~루치아!”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성악 공부를 하러 온 자기보다 훨씬 잘 부르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죽은 그는 성악 대신 패션 공부를 하고 돌아 갔다”고 한다. 우스개 소리지만, 그만큼 칸초네가 대중화되어 있고 누구나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칸초네 하면 떠 오르는 것이 <산레모 가요제(Festival della Cazone Italiana)>다.
산레모(Sanremo)는 프랑스 국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관광도시다. 프랑스 <칸(Cannes)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니스(Nice)와도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5년이 지나도록 관광업이 회복되지 않자 산레모의 똑똑한 지도층들이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에 사흘 동안, 가요제를 열기로 한다. 1951년 막을 올린 가요제는 처음에는 라디오로 이탈리아에만 중계됐으나, 1955년 TV 중계가 시작되고 마지막 날 결선이 인접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에까지 생방송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에도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많은 가수들이 원곡 또는 번안곡으로 그 노래들을 불렀다. ‘카사 비안카(Casa Bianca/언덕 위의 하얀 집)’를 비롯해 ‘논 호 레타(Non ho l' età/나이도 어린데)’, ‘쿠안도 쿠안도 쿠안도(Quando, quando, quando/언제 언제 언제인지)’, ‘케 세라(Que sera/누구일까)’ 등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다. 한국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불린 펄시스터즈의 ‘하얀 집’이나 조용필의 ‘케 세라’, 이용복의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등을 당시 음악 프로그램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1966년 <산레모 가요제>에 출전해 입상한 ‘네수노 디 보이(Nessuno di Voi/당신들 누구 하나)’는 한국에서는 ‘서글픈 사랑’이란 노래로 알려진다. 이즈음에 부른 ‘아리아 디 페스타(Aria di Festa/축제의 노래)’도 한국에 널리 알려진 노래다. 윤형주, 송창식으로 구성된 트윈폴리오가 ‘축제의 밤’이란 번안가요로 널리 유행시켰다. ‘리멘시타(L’immensita)’는 다른 가수가 불러 산레모에서 입상한 노래지만, 밀바가 커버한 곡이 더 유명해지면서 그녀의 노래가 됐다. 이 노래도 이미배가 ‘눈물 속에 핀 꽃’이란 번안가요로 불렀다.
밀바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또 영화음악의 거장인 엔리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 등과 협업해 앨범을 내기도 했다. 1977년에는 <뮤지컬 에비타>에 삽입된 엔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이탈리아 버전을 내놓는다. 마돈나의 노래가 나오기 20년 전이다.
밀바는 탱고의 대표곡 ‘라 쿰파르시타(La Cumparsita)’를 자주 불렀다. 1916년 우루과이 로드리게스가 만든 곡이지만 세계로 널리 퍼져 많은 영화의 ‘가장행렬’이나 ‘축제’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는 레전드 노래다. 그녀는 한국을 비교적 자주 찾았던 지한파 가수이기도 하다. 1972년,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 앙코르로 한국 가곡 ‘보리밭’을 우리말로 불러 환호를 받았다.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다녀갔다.
‘칸초네의 여왕’ 밀바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이탈리아의 이미지로 오래 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녀가 떠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어쿠스틱 한 연주에 녹여진 그녀의 노래는 언제나 다시 꺼내 들을 수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