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과 영애>의 ‘아름다운 사람’

by 황현수


오늘 아침에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내 주셨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라고 시작된 글 내용은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열린 음악회>를 어제 시청하다가 새로운 걸 발견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 노래 중에 ‘처마 밑에 한 아이’가 자막으로는 '처마 밑에 하나 이'로 나옵니다. 참고로 그 영상 화면들을 여기 붙였습니다.”며 ‘한 아이’가 맞는지,하나 이’가 맞는지를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악보를 찾아보았더니, 어떤 것은 ‘한 아이’로 다른 것은 ‘하나 이’로 혼재돼 있는데 공영방송인 KBS에서 허투루 자막을 실수하진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도 적어 주셨다.

한 독자가 <김민기 ‘아침이슬’ 50주년 열린 음악회>를 시청하다가 ‘아름다운 사람’ 곡의 자막 중에 ‘한 아이’가 ‘하나 이’로 표기되어 있다고 어느 것이 옳은 지 문의해 왔다


아마 내가 대중음악 관련 칼럼을 쓰니, 김민기하고 잘 알 것 같고 혹시 모르더라도 연을 달아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를 이만큼 신뢰해서 물은 독자의 질문이니 일단 답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먼저 ‘아름다운 사람’ 노래를 찾아들어 보았다. 김민기와 <현경과 영애>의 노래를 들었다. ‘아, 이 노래 언젠가 들어 보았는데… <현경과 영애>라는 듀오가 있었지’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두 번째는 자세히 가사를 보며 들으니 문의하신 뜻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지금의 댄스 가수만큼이나 인기가 있던 통기타 포크 가수들이 있었다. 가수뿐만이 아니라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통기타 칠 줄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붐이 일어나, 통기타 하나 장만하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었다. 조영남, 송창식, 김민기, 서유석, 양희은, 윤형주, 김세환, 어니언스 등이 음악 프로그램의 주요 시간대를 차지했다. 그때 <현경과 영애>라는 듀오도 이들 사이에 잠시 끼어 대중에게 모습을 비췄다.


1971년에 서울대 미대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며 선배들이 “회화과 대표로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 손드세요”하니까, 용감하게 “저요!”하며 손을 든 두 명의 여학생, <현경과 영애>다. 이현경은 이화여고를 나왔고 박영애는 숙명여고 출신이었는데 둘 다 통기타를 칠 수 있어서 손을 들었단다. 둘은 장기자랑을 위해 며칠 동안 연습하여 신입생 환영회에서 당시 유행하던 팝송을 불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그 뒤부터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당시 서울대에는 미대를 중심으로 이정선, 김민기와 김영세의 <도비두>, 김아영과 최분자의 <두나래>, 김광희 등의 쟁쟁한 아마추어 포크 가수들이 있었다. 그 시절은 음대 쪽 보다 미대에서 직업 가수가 많이 나왔는데, 음대에서 학생들의 대중음악 활동을 학칙으로 금했기 때문이다.


<현경과 영애>의 너무도 순수하고 맑게 노래하는 모습을 본 김민기는 이 듀오에 반한다. 그들의 노래들은 70년대의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던 젊은 청년들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작사, 작곡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곡을 준다.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글이 길어져 가사를 다 옮기지 못했지만, 이 노래에는 아이들에게 물려주고픈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 노래에도 사람의 지문 같은 것이 있어, 김민기의 무늬가 또렷이 묻어 있는 작품이다. 첫머리의 기타 연주는 얼핏 단조롭게 들리나 어린 시절의 맑은 넋을 잘 나타냈고, 베이스 기타는 길동무처럼 이현경의 목소리와 나란히 간다. 박영애는 상대적으로 깊고 남성스러운 목소리를 지녔는데, 이현경과 어우러져 흡사 혼성 듀오 같은 느낌이 든다.


이현경과 박영애는 때로는 번갈아 노래하고, 때로는 같이 입을 맞추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준다. 1절은 이현경이 솔로, 2절은 박영애가 솔로, 3절은 이현경과 박영애가 나눠 부른 느린 템포에 단순하고 소박한 노래다. 박영애는 훗날 어느 인터뷰에서 “나이가 든 어느 날 들어도 맑고 깨끗한 영혼과 빛을 잃지 않는 순수하고 깨끗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며 자신들이 추구한 음악적 색깔을 고백한다.

현경과 영애2.jfif <현경과 영애>는 1971년에 서울대 미대 신입생 환영회를 준비하다가 탄생한 듀오다. 첫눈에 반한 김민기는 작곡한 ‘아름다운 사람’을 <현경과 영애>에게 준다.


<현경과 영애>는 목소리의 음량이 풍부하지 않고 기교도 그리 없었지만, 사람의 음성이 어우러질 때의 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단조로움이 듣는 이가 스스로 불러보게끔 유도하는 듯하다.


박영애의 아버지는 을지로에서 양복점을 했고, 어머니 이은남은 독립운동가 집안의 딸이었다. 어머니는 일제 시대부터 동요 작가 윤석중과 함께 노래 모임을 하며 최승희 무용단원으로 활동을 해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 영향으로 박영애는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KBS, 기독교방송 어린이 프로에 나가 '엘리제를 위하여'등을 연주했을 만큼 음악적 재능이 많았다. 대학 때는 그림 무용 노래 연극 암벽등반 등 못하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재주꾼으로 통했다.


아버지가 군 장성 출신이었던 이현경은 음대를 갈 만큼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고, 작곡과 편곡을 할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 두 사람은 대학 입학을 하면서 당시 청소년들의 꿈이었던 통기타를 처음 배운다. 성격은 너무도 판이했지만 두 사람이 빚어낸 맑고 깨끗한 화음은 서로를 존중해 주었고 노래만큼이나 사이도 아름다웠다.

<현경과 영애>의 주무대는 데뷔가 그랬듯이 대학가였다. 특이한 점은 다른 포크 가수들이 TV, 라디오, 음악 살롱 등 다양한 공연을 했던 것과 달리, <현경과 영애>는 줄곧 아마추어 적인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포크 가수들에 비해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대학가에서의 인기는 대단했다. 서울대에는 ‘<현경과 영애> 음악 듣기 모임’이 있을 정도였다.


<현경과 영애>는 1974년에 ‘아름다운 사람/내 친구’라는 유일한 데뷔 음반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데뷔 음반이 본격적인 활동을 알리는 것이지만, 이 음반은 <현경과 영애>의 대학 시절 4년간의 음악 활동을 정리하는 기념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직업 가수로의 유혹에 다소 흔들리기도 했지만, 4년 간 불렀던 노래들을 모아 단 1장의 음반을 세상에 남기곤 미련 없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

이현경은 졸업 후인 1977년에 재일동포 의류 유통 사업가와 결혼을 해, 일본 교토에 거주하며 네 아이의 어머니로 살아간다. 박영애는 미술작업에만 전념하며 화가이자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마음을 안내하는 교육자로서 산다. 둘은 2002년 재회해서 방송 출연을 하지만, 다시 컴백하지는 않고 조용히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다시 처음 이메일을 주신 독자의 질문에 답을 드려야겠다.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제목처럼, KBS 화면의 자막 ‘하나 이’‘한 아이’를 잘 못 표기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열린 음악회> 김민기 편을 찾아보았더니, 가수 박혜원은 분명히 ‘한 아이’라고 발음하네요. 방송사에서 간혹 이런 실수를 하곤 합니다. 또한 다른 가사집들을 찾아보니 모두 ‘한 아이’로 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가사 내용에도 ‘한 아이의 마음과 영혼에 들어 있는 사랑이 아이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뜻이 녹아 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하나 이’라는 자막이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네요. 덕분에 잊었던 <현경과 영애>의 ‘아름다운 사람’ 잘 들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