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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수 May 29. 2020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

페르시아 고전에서 찾은 신라 이야기

몇 년 전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혼인 이야기가 발견되어 한국에서 <바실라>라는 무용극으로 발표됐다.  한양대학교 이희수 교수가 페르시아의 서사시인 쿠시나 메(Kush Name)에서 신라 이야기를 찾아낸 것이 흥미로워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을 더해 본다.

 

<발단> 

650년경 신라 진덕여왕 시대이다. 김법민(30대 문무왕)은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당나라까지 가서 외교 활동을 한다.  당나라 수도 장안은 세계 문명의 집단지로서 페르시아, 바그다드 등에서 온 외교 사절이 빈번히 왕래하는 곳었다. 마침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Abtin) 일행이 이슬람 제국의 침략을 피해 그곳에 있었으나, 당나라와 이슬람 제국 사이에 외교가 이루어져 그곳에 계속 머물를 수 없었다.  페르시아 왕자의 딱한 사정을 접한 김법민은 페르시안 왕족의 신라 망명을 주선한다. 그 대신 화랑에게 군사 기술, 금세공 등을 가리켜 달라고 한다. 김법민이 문무왕으로 즉위하자, 페르시아 왕자는 화랑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해 큰 공을 세운다. 

 

<전개> 

문무왕은 크게 기뻐, 아비틴 왕자에게 자신의 이복 여동생인 지석 공주와 혼인하게 한다. 아비틴 왕자는 국학(나라의 교육 기관)에서 페르시아 글과 무술을 왕족에게 가르친다. 그곳에서 공부한 설총이 훗날 한자의 한국어 표기법인 이두를 만든다. 

  삼국통일을 한 문무왕은 당나라 군대를 쫒아 내기로 마음먹고, 아비틴 왕자에게 "최정예 화랑 500명을 줄 테니 먼저 적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명한다. 아비틴 왕자는 가족과 함께 페르시아를 간다며 적 진지 깊숙이 들어 가지만, 당군은 지석 공주를 인질로 잡는다. 뜻하지 않게 아비틴 왕자 일행은 신라로 가지 못하고 페르시아로 향한다. 지석 공주는 당군의 경계가 느슨해 지자 뇌물을 주고 적 진지를 탈출,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비틴 왕자와 만나 항구 마을 비사성에 이른다. 때 마침 인도양으로 떠나는 무역 선단이 선원들을 모집하고 있어 배에 위장 승선한다.

 

<후반>

일행은 태풍과 풍토병에 시달리며 갖은 고생 끝에 페르시아에 도착하였지만, 페르시아 왕을 지지하던 세력은 뿔뿔이 흩어져 자취를 찾기 어렵다. 아비틴 왕자는 군대를 모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이슬람 제국 군대는 그의 숙소를 습격을 한다. 아비틴 왕자는 이렇다 할 전쟁 한번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다행히 지석 공주와 아들 페리둔은 화랑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신분을 감추고 상인으로 살아간다. 유리 공예, 진주, 보석 등 귀중품을 팔아 큰돈을 버는데, 군사 자금이 마련되자 옛 페르시안 왕족들과 군대가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

<결말>

아들 페리둔의 군대는 나라를 다시 찾겠다는 용기와 신념으로 이슬람 제국을 무찌른다. 그의 곁에는 항상 용감한 화랑이 함께 했다. 그 화랑은 페리둔이 왕이 되자 왕궁 호위대로 남는다. 지석 공주는 남편 잃은 애절함과 고국의 그리움으로 무역 선단을 따라 신라로 돌아온다. 그때 함께 왔던 페르시안들은 개성 근처, 벽란도(당시 국제항)에서 유리 공예품을 팔거나 인삼을 수출하는 상인으로 정착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만, 김유신의 묘에서 아름다운 페르시안 유리병이 나온 것이나, 고려시대 수도인 개성 근처에 무슬림들의 집성촌이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신라 공주의 이야기는 우연이 아닐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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