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생활에서 헬스장의 소중함과 집콕으로 에너지 충전하기.
오늘은 수요일이고, 어제 화요일은 재향 군인의 날이었다. 베테랑스 데이 Veteran's Day. 빨간날이었다. 토-일-월-화. 나흘 연휴였다. 나흘 연휴가 다가 오면 마음이 살짜쿵 불안하다. 왜냐하면 '너무 혼자 오래있으면' 심심함이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 극에 달하는 마음을 알기에 나는 미리 불안해진다. 나의 이 '미리 불안해짐'병은 진짜로 병 같다. 미리 생각해서 불안해한다. 불안도 앞당겨서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뭐든지 미리미리. 일에서도 나는 나의 이 '뭐든지 미리미리' 정신을 발휘한다. 그냥 제 때에 하면 되는데, 괜히 먼저 설레발을 친다. 그래서 일도 앞당겨서 하고, 일이 닥치지도 않았건만 불안의 감정도 미리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불안이 좋게 발휘할 때는, 바로 계획을 할 때다. 그리고 그 계획이 실행대로 옮겨지면 그만큼 좋은 일도 없다. 사실, 제~일 좋은건 토-일-월-화 삼박 사일 어딜 좀 다녀오는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마음을 탁, 털어 버리고, 통장의 돈을 탁, 깨어 버리고, 훌~훌~ 이 물결무늬 표시처럼 떠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내 발목을 잡는 건 돈이고, 운전이고, 또 이유야 댈래면 여러가지다. 미국에서 혼자 사는데 어떻게 혼자 여행을 가......(왜 못가나?) 여행은 좀 잔고에 여유가 있을때 가는 건데 어떻게 가......(그 놈의 잔고 타령. 혼자 사는데 그렇게 아껴서, 관에 같이 가져갈거나?) 여자 혼자 어떻게 장거리 운전을 해, 그것도 미국이라는 타향에서 말야......(미국에서 두시간 운전은 기본같고, 대여섯시간은 그래도 좀 가 줘야 '여행 온 기분'이 난다. 두 시간의 장벽은 깼다. 그것도 쉽지는 않지. 그런데 네다섯시간은 뭔가 엄청나게 강한 의지가 아니면 쉽지가 않다. 그래도 지금 안 가면 언제 갈거나?) 인생은 이 괄호를 기준으로 밖의 마음과 안의 마음의 갈등의 연속이다. 어떨 때는 괄호 밖의 마음이 이기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괄호 안의 마음이 압승을 하기도 하지. 어쨌거나 나의 이번 나흘 연휴에 장거리 여행은 없었다. 사실 단체로 등산가는 것에 '간다'라고 표시만 해 놓고, 실제로 가지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멀더라. 한 시간 좀 넘게 운전을 하면 조금씩 지친다. 내가 사는 곳은 풍경이 비슷비슷해서 운전하는 게 더 지겹다. 그래서 가다가 중간에 다른 길로 새어 버렸다. 대신 혼자 산책을 했다. 의외로 내가 이번에 발견한 공원은 나에겐 새로운 발견이라서 신선했고, 또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 좋은 공간이라서 더욱 신이 났다. 1인 생활자로 이런 '새로운 곳'을 발견할 때의 즐거움은 정말로 크다. 게다가 그 곳이 접근 가능한 곳이라면 더더욱 즐거움은 배가 된다. 다음에 또 와야지! 하는 다짐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 다짐이 진짜 소확행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하는 나흘 연휴였다. 괄호 안의 마음이건 밖의 마음이건 중요한건 '내가 그 선택을 했을 때,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느냐'인것 같다. 돈을 쓰기로 했으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즐기면 되는것이고, 또 돈을 안 쓰기로 했으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비를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가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걸 선택하나 저걸 선택하나 무정하게도 시간은 후루룩, 흘러가 버린다. 뭘 해도 어떻게든 시간은 가더라.
이번 연휴를 통해 느낀건 확실히 루틴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오히려 이런 연휴를 통해 그런 루틴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 은퇴가 별거일가 싶다. 은퇴라는 건 내가 6070의 중간 어느 시기에 일에서 손을 떼고, 눈떠 있는 열 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 삶의 리듬과 템포에 맞게 사는 것이겠지. 그럴 때 루틴은 중요하고, 그 루틴은 소비를 통해서 쉽게 이뤄진다. 돈 안쓰고 하루 종일 혼자서 뭔가를 하는건 정말로 어렵다.
그리하여, 그냥 나는 수영장 멤버쉽을 등록하기로 했다. 토-일-월-화 사일 중에 마지막 날 화요일은 빨간 날이라,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여는 곳이 많지 않다. 내가 주로 가는 헬스장은 이런 날은 꼭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나흘 내내 밖을 쏘다니며 엄청난 운전을 할 자신도 없다.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중요하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자, 그렇다면 내가 사는 반경 안에서 내 일상을 꾸릴 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아령을 드는 것이다. 수영장 물 안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대면서 온 몸을 흔들어 주는 것이지. 그러지 않으면, 잠이 잘 안온다. 그러지 않으면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에 붕~붕~ 떠다닌다. 주로 그 잡생각들은 파리떼처럼 내 인생에 방해꾼이지, 도움이 되는 것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일단 근육에 약간의 통증이 있으면, 그 몸에 온 생각이 집중되면서 잠이 이상하게 잘 온다. 십분이라도 아령을 들고, 삼십분이라도 수영장에서 첨벙대다보면 파리떼같은 잡생각을 쫒는데에는 최고의 명약이다. 그리고 이렇게 체육관에 한번 다녀오는 일상은 정말로 고급지게 느껴진다. 열시 즈음 느즈막하게 일어나서, 배가 고프니 음식을 챙겨먹고, 내 생활 리듬대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다음주 음식을 준비한다. 그 리듬은 느리지만, 비난받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 환경. 나는 그런 환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내가 무엇을 하든, 당신이 무엇을 하든, 그것이 공동체의 선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일체 간섭하지 않는 것. 방해하지 않는 것.
집단주의적 분위기가 강한 곳에 있다면,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삶의 속도를 게으르다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그런 모습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스스로 닥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방해와 시선으로 부터 멀어져 있다. 그래서 집콕을 하지만 그냥 나는 내 속도를 유지한 채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