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러, 1인 생활자의 연말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일찍 지는 해, 그럼에도 루틴과 사회생활

by 달순

연말이다. 수년 전 이 곳에 처음 정착했을때, 십이월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해가 너무 일찍 졌고, 오후 대여섯시임에도 마치 한밤중 같았다. 지나친 고독, 심심함, 지루함은 사람을 늙고 삭게 만든다. 그 첫해 겨울을 나는 동안 가끔은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서, 그 다음해 겨울에는 한국에 다녀왔다. 이 곳은 해가 들면 천국이요, 해가 지면 갑자기 사위가 적막해진다. 어딜가나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한인들 사이에선 '미국에서 사는게 좋은가? 한국에서 사는게 좋은가?'가 단골 수다 주제다. 한인 B의 말대로 '천국은 없다'.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자, 그럼, 이 (평소에도 좀) 심심한데 겨울에는 더 심하게 심심한 미국에서 홀홀단신 1인 생활자로 어떻게 외롭지 않게 연말을 보낼 것인가?

cristian-escobar-abkEAOjnY0s-unsplash.jpg 이미지 출처ㅣ Photo by Cristian Escobar on Unsplash
#대형 마켓에 가지 않는다.

코스코와 단절했다. 멤버쉽을 없애 버렸다. 오르는 물가를 감당해야 했고, 이상하게 코스코는 뭐랄까, 몇 개 안 담았는데 백불이 훌쩍 넘었다. 무슨 줄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팍팍 오르는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 감당해야 할 '양'이 버겁게 느껴졌다. 냉장고에 식재료들이 꽉 찼다가, 없어져야 제맛인데, 워낙 양이 많아서 한 제품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맘에 들지 않았다. 또, 연말에 코스코에 가면 갑자기 '대가족'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아이들이 많고 남편도 있고, 주변에 일가친척들이 북적북적해야 할것 같다. 연말에 코스코에 가면 왠지 나만 빼놓고 다들 즐겁게 파티를 하는 것 같다. 젠장할, 다들 나 빼놓고 노는거야? 이 분노 자체가 웃긴다. 그런데, 그 분노를 유발하는 공간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굳이 그 공간에 갈 이유가 뭐가 있을까. 1인 생활자는 이렇게 스스로 꼰대가 되어간다. 자신만의 생각, 독립심, 행동력, 결심 이런게 1인 생활자에게 중요하다. (내 문체를 보라, 아주 짧고 단호하다!) 코스코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대용량으로 사 두면 마음이 편안한 두루말이 휴지 정도다. 그런데도 나는 존심이 강한 녀자인가?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인지, 코스코 멤버쉽을 갖고 있는 S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야, 나랑 같이 코스코에 한 번 가자. 니 멤버쉽으로 입장 좀 하자. 휴지하고 세제좀 사 놓게 말야. 주고 받는게 좋을 때도 있는데, 나는 안 주고 안 받는게 편하다. 그런데 또, 모르지. 많이 심심하면 S에게 물어볼 수 있지. 왜 안되겠나 말이다.

#땡스기빙 - 동료들을 만난다. 맛난 밥을 먹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와 비슷한 1인 생활자들이 종종 있다. 앞에서 언급한 S가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같이 밥을 먹는다. 아우, 솔직히 나는 사람을 초대하는게 재미는 30이고 귀찮은게 70이다. 그래, 나도 귀찮은데 상대방도 귀찮을것 같다. 집에 초대하는 대신 땡스기빙에 다행히 우리는 갈 곳이 있다. 돈을 내고 밥을 먹는다. 에잇, 기분이다! 싶어 내가 S의 밥을 샀다. 식후에는 산책을 하면서 소화를 시켰다. S는 놀라울 정도로 똑똑하다. 가끔은 그녀의 '미리 알아보는' 똑똑함이 좀 무서울 때도 있는데, 대화를 하다보면 지혜로움에 놀랄 때가 있다. S는 최근 다른 동료와 바캉스를 다녀왔다. 나는 물었다. 그래, 그 사람하고 같이 바캉스 가니까 어땠어? 그녀의 대답에 나는 탄복했다. "뭐 완벽한 만족은 없어. 그냥 맞춰가는 거지. I cannot satisfied with everything. There is no perfect person. I can adjust." 크허! 그래, 멋지고 너 답다!

#연말 모임이 없다고 해서 쫄지 말자. 대신 그 시간에 나는 다가올 26년을 생각하고 계획한다.

휴가는 언제가지? 이런 생각을 한다. 연말이다보니 들뜰 수 있다. 나쁘지 않지. 그 들뜨는 마음을 나는 '여행 계획'으로 푼다. 한국은 언제 가는 게 좋을까? 비행기 표도 슬쩍 들여다 본다. 여행 계획과 더불어, 각 달에 대해 생각해 본다. 훔, 세금 보고는 언제이지. 훔, 치과 진료비가 얼마쯤 나가겠군. 이 달에는 이런 일이 있겠군. 이런 예상을 하면 뭔가 마음이 채워진다. 맞다. 나는 MBTI에서 확실한 J다. 그래,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2026년이여, 나를 위해 즐거운 시간을 되도록 많이 갖고, 스트레스는 적게, 그리고 체력을 키우기 위한 루틴을 만들어 보자.

일에서는 연말이기 때문에 조금 느슨한 분위기다. 그것을 즐긴다. 대신 남는 에너지로 운동을 더 해 보려고 한다. 하루 만보 걷기를 해서 애플 워치의 링을 채워본다. 남는 에너지로 등산 모임에 가 본다. 등산은 혼자서 가면 3마일 걸으면 잘한건데, 여럿이서 가면 7마일이고 8마일이고 가게 된다. 그게 단체의 힘이다. 역시나 나는 사회적 인간이라, 그 사회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남는 에너지로 글쓰기 모임에 더 규칙적으로 가겠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이런 글쓰기를 자꾸 해 보겠다.

남는 에너지로 영어 말하기 모임에도 들어가 보겠다. 모르는 사람들이고, 온라인 모임이지만, 자꾸 이런 자리에 나를 들이밀어야 영어를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다. 한인 1인 생활자는 고립되기 쉽다. 등산이든, 영어 모임이든, 글쓰기 모임이든 미국인들과의 교류를, 그것이 몇 분의 짧은 대화라 할지라도, 이어가야지. 나를 열어놓는 연습을 하는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직장 때문에 고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일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져 있고,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동료들의 얼굴은 잘 바뀌지 않는다. 이들과 오래도록 함께 일하려면, 마치 오리가 겉으로는 둥~둥~ 떠다니는것 같지만 물 아래로는 열심히 발을 구르듯이, 나 역시 열심히 굴려줘야 한다. 고인 물에서 썪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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