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라, 낙수야.

행복해라, 달순아.

by 달순

김부장을 다 봤다. 마지막 회 제목은 소낙비였다. 촤르르,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서 김부장의 머릿속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김부장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한 말들이 소나기 줄기처럼 그의 머릿 속에 쏟아진다. 기억이고, 회고이다. 한국 사회는 개인에게 그렇게 회고하고, 기억하고, 되돌아볼 시간과 여유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사회가 너무도 빠르게 돌아간다. 그 속도는 어마무시하다. 그래서 그 속도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내 아버지의 표현대로 ‘모가지가 잘려야’ (회사에서 퇴사를 당해야) 그제서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진짜 자신과 만나고, 내공이 쌓인다. 이 드라마에서 좋았던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머리에 기름칠을 한 김낙수가 흰수염이 난 김낙수에게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낙수야, 행복해라.’ 내가 내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다. 그건 참으로 사소해 보이지만 너무도 중요한 말이지. 내가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준다는 것이니까.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게 인생의 의미 아닌가. 내가 나를 찾아가는 일. 내가 나와 화해하는 일.

그 소파에 앉아 있던 김부장 이미지 위로, 아빠의 살아생전 모습도 겹친다. 아빠가 살았던 집 마당에 아빠는 낡은 소파를 갖다 놓았고, 거기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김부장처럼 본인의 가족과, 일터 사람들과, 과거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았을까……. 김부장 드라마를 보는 동안 참, 리얼하고, 씁쓸하고, 공감도 가서 눈물도 났다. 회사 생활을 하는 김부장, 사기를 당하는 김부장, 자존심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김부장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 아버지의 모습,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인물은 그 인물이 속한 사회를 안 닮을래야 안 닮을 수가 없나보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과 사회를 제대로 재현해 내면, 그 작품은 ‘핫’하다. 너무도 내 이야기이기에…… 내 모습이기도 했고, 한국이라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했던 드라마 ‘김부장’.

2013년에, 약 12년 전 나는 한국 사회에서 떠나 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했던 짧은 회사 생활 경험은 내 몸과 마음에 조금 각인되어 있다. 나는 입사할 때 이십대 후반이었다. 조직이라는 곳에 들어가기에 내 나이가 좀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게 ‘이미 진’ 게임이라는 것도 모르고, 패기롭게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김부장이 부장의 직급에 맞게 비싼 검은색 가죽 가방을 샀던 것처럼, 신입사원이되었다고 엄마는 내게 기죽지 말라고 백화점에서 가방을 사 주셨다. 수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이 아니었음에도, 한국 사회에선 그 비슷한것이라도 들어줘야 한다. 명품 백, 명품 차. 나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한 소품들. 내 자존심을 지켜주는 든든한 무기. 그 소품을 들고 매일 출근했으나, 안타깝게도 회사 일은 내 적성과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이 년 가까이 다녔다. 회사 생활에서 제일 힘들었던 건 내가 속한 업무 분야와 내가 속해야 할 그룹의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 업무적으로도 인간관계적으로도 외톨이였다. 그래서 사면초가 같았다. 한국 회사 생활은 스물 셋 넷의 대졸자가 입사를 하고, 신입이 되고, 대리가 되고, 과장, 차장, 부장, 임원급: 이사, 전무 이렇게 가는 것 같다. 내 나이는 대리의 나이였는데, 직급은 사원이어서, 나이가 중요한 조직에서 나는 낙동강 오리알 같았다. 한국 사회의 조직 생활에는 어떤 ‘무리’들이 있다. 그 무리 속에서 끌어주고 당겨주는 누군가가 생긴다. 그 관계가 회사 생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끈’이되기도 하며, 동앗줄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일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김낙수가 나레이션으로 한 말처럼 ‘전무와 부장’은 서로가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계속 같이 갈 수 밖에 없고, 그것이 회사라는 조직이 사람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통찰력이 빛나는 대사도 멋졌다.

나 역시 무리에 속해 있었지만 그렇다고 안심되지 않았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터에서 마음이 채우지길 바랬다니, 나도 참 세상의 비정함을 몰랐다. 그래도 거기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조직의 생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을 잡았던 것 같다.

이제 나는 1인 생활자로 미국에서 살지만, 한국인의 피와 문화를 지니고 있는 해외 노동자로서, 땡스기빙 연휴에 김부장을 보고 울고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화가 났던 부분은, 왜 한국 사회는 오십 중반이 되면 회사에서 그 사람을 내치는 걸까? 였다. 백세 시대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오십대 중반부터 살아야 하는건가? 그렇다고 미국이 천국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다만 미국은 법적으로 ‘나이가 많다고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건 불법’이라고 명시해 놓았다. 그래서 나이가 많아도, 60대 70대여도 일꾼으로 기능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함부로 자를 수 없다. 물론 이 부분 ‘일꾼으로 기능을 할 수 없다면’ 또 바로 무지막지하게 해고하는 게 미국 사회이기도 하다. 어떤 회사는 해고 통보 후, 삽십분만에 그 건물을 나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돈이 어느 정도 있어도, 의료 보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보았다.

일이란 뭘까? 나이가 많아도 일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몇 살까지 일하고 싶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일을 하고 싶고, 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만큼 홀대 받는 기분이 또 있을까. 이제 나는 사십대 중반으로 접어드는데, 이 나이에 내가 한국에 가서 돈벌이를 해야 한다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현재의 직업에 최대한 오래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강력한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해고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아마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다른 직장을 잡는게 더 가능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을 했던 한국인 여성은 일을 그만두게 되고, 트레이더 조라는 식품점에서 일을 했고 그 경험을 책으로 냈다. 미국의 개인주의 문화는 그런것 같다. 당신이 얼마나 돈이 많든, 이전 직장이 얼마나 화려했든, 그냥 그것을 개의치 않는 것. 그래서 아이티 업계에서 일을 하든, 식품점에서 일을 하든, 그냥 그건 일을 하는 것. 물론 아예 구별이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에서처럼 뭔가 계급적이지는 않다. 대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면 진골, 성골 계급이고 블루 칼라 노동직으로 일하면 더 계급이 낮아 보이는 것. 그런데 이제는 그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 아닌가?

드라마 김부장에서 또 좋았던 부분은 김부장이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너도 뱀이구나.’ 하는 부분. 사람의 인성, 캐릭터를 간파하는 말들. 그런 대사들이 탁! 하고 와 닿았다.

나는 김낙수와 다르다. 김낙수는 25년, 청춘과 영혼을 바치고, 한 회사에 자신을 갈아 넣었다. 아마 내 아버지도 그러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상사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고, 오직 자녀 교육과 양육은 엄마의 몫이었다. 많은 한국의 부모님들의 생활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중요하고 내 중심이 중요하다. 일에 나를 갈아 넣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일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다.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다. 일의 성과가 나의 성공, 내 인생의 성적표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과 (사)생활을 분리한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지만, 미국 사회도 상당히 워크 홀릭 일중독 문화이고, 또 미국 내 한인들 중에 일 중독자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집에 가져간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추가 노동에 대해서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는데, 정말로 ‘누구 좋으라고’ 그래야 하는가.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일을 하려면 그만큼의 체력이 중요하다. 김낙수는 굳이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가서, 주차장에서 세차를 하면서라도 그 ‘뭔가’를 이해하려고 한다. 도대체 자신이 쏟아 부은 그 ‘회사에서의 25년’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그만큼 그는 회사와 무아일체가 되어 버렸던 것 같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물론 해외 1인 생활자의 삶이 때로는 지루하고 심심하고, 너무 그러한 정도가 심하면 결국 ‘일’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시간이 가니까. 그렇게 하면 성과가 나니까. 하지만 그게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 시간에 등산을 가고, 새로운 미국인들을 만나서 수다로 짧게나마 친구가 되고, 근처 도시를 다니고, 문화 생활을 즐기고, 글을 쓰겠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나의 시간이니 말이다.

낙수야, 그,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 전 회사에 가서 유령처럼 있지 말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렴. 그러면 새 시간, 새 생활이 새싹처럼 돋아나지 않겠니. 그래도, 행복해라. 낙수야. 행복해라 나 자신아.

202510270112036052.jpg 이미지 출처: https://tv.jtbc.co.kr/thedreamlifeofmrki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펜하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