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 일상생활을 하다 무언가를 써야 한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면 자리를 잡고 앉아 와다다 써내려 가는 편인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다. 영감은 번뜩 찾아왔다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처럼 허망하게 사라진다. 너무 자주 그러는 통에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다들 어떻게 글을 쓰는 걸까.
매년 브런치 공모전이 시작된다는 알림을 받으면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뭐라도 써야만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마 글감이 나를 향해 다가오다가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질려버려 방향을 틀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절절매는 통에 작년 공모전은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일단 대여섯 개의 글을 써놓았을 뿐이다.
위대한 작가들은 입을 모아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글쓰기 근육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글감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기분과는 상관없이 일단 정해진 시간에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는 굳게 마음을 먹고 매일 아침 텅 빈 화면과 대치하는 숨 막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껌벅거리는 커서를 멀뚱히 바라보다 결국 두 손 두발 들어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글을 쓰는 것이 아직도 끼니를 챙겨 먹듯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갑자기 찾아오는 번갯불 같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달간 불안과 고민에 휩싸여 많은 것을 흘려보냈다. 정신만 제대로 차렸다면 이맘 즈음에 훌륭한 브런치 북을 완성했을지도 모르겠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라는 브런치 리마인더를 읽으며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었겠지.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슬픈 일이지만 올해 브런치 북도 이렇게 안녕일 듯싶다.
그럼에도 불안의 안개를 헤쳐 나오고 나니 기분이 그럭저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다만마음이 너덜거리는 사이 엄마에게 쌀쌀맞게 대한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왜 이러는 걸까. '잘해야지'란 다짐만 쌓여가고 있다. 그건 그다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는 제주에 다녀왔다. 함덕 쪽에 자리 잡은 지인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안방 창을 열면 두 눈에 감귤밭이 가득 채워지는 곳이었다. 자연의 색으로 넘실거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얼른 시골에 들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시골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원체 도시보다는 한적한 곳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오랜 도시 생활에 지친 탓도 있으리라. 자연에 둘러싸인 곳에서 남을 생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언제 즘 내려갈 수 있으려나? 돈을 모아야지. 결국엔 돈이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지독한 자본 회귀의 법칙. 어느 정도의 돈이 적당한 수준인 걸까. 결국엔 만족을 모르고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욕심부리다 도시의 떠돌이 영혼이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무턱대고 내려가는 건 또 너무 대책 없지 않은가. 생각의 추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자 운동을 반복한다. 급할 건 없으니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려 한다.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 복잡한 우울을 안고서도 이렇게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나의 정직한 식욕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끙끙거리며 고민하다가도 아침에 먹는 토스트와 카페라떼 한 잔에 만족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단순한 사람이기에. 비틀거리면서도 결국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 올해 브런치 북을 쓰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삐뚤빼뚤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나만의 길을 만들어 나갈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수업이 취소된 하루를 늦잠으로 시작하고 글을 쓰는 이 시간이 꽤나 만족스럽다. 다 괜찮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