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면 인간은 좀 더 현명해질까?
무관심하거나 화가 난듯한 아침의 얼굴들.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는 낯선 얼굴에서 익숙한 표정을 본다. 내 얼굴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매일을 살지만 진정 원해서 사는 건지 아니면 어떤 힘에 의해 살아감을 당하고 있는 건지 아리송하다. 어쩌면 후자에 더 가까울지도. 주체성이 결여된 채 매일을 살아갈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깃발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 보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고 그저 열심히 허우적 거린다. 그러는 사이 밤이 오고 소득 없는 하루지만 일단은 삶의 한 자락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잠에 든다. 이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지. 처음부터 의미 따위는 없는 거지. 의미 없는 삶이지만 죽는 날까지 지겹도록 의미타령을 하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참으로 고되다. 살아간다는 것은 말이다.
스르륵 미끄러지는 모래시계의 모래알처럼 사는 것이 빨려 들어간다고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축나는 하루의 연속. 왜 나의 하루를 마음대로 뺏어가냐며 세상에 화를 내던 시기였다. 차오르고 이우는 달처럼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것이 삶의 신비란 것을 몰랐던 것인가! 모래가 전부 내려가면 가벼운 마음으로 모래시계를 뒤집어 새로 시작하면 된다. 가만 보면 슬픈 다음에는 늘 바닥을 치는 상쾌함이 있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사실은 나를 안도하게 한다. 무의미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준달까. 슬픔, 기쁨, 고통마저도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라면 크게 기뻐할 것도 낙담할 것도 없지 싶다. 인생에 큰 뜻 같은 것일랑 세우지 말고 죽는 날까지 매 순간을 사는 것, 그게 다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삶 지긋지긋하다며 호기롭게 직장을 때려치웠건만 여전히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꾸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어째서? 무엇을 위해? 아직 떨쳐내지 못한 일종의 허세이자 건강하지 못한 마음이다. 덜어내고 털어내자. 불투명한 마음과 무거운 생각을 놓아주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우당탕탕 불안해지는 말썽꾸러기 마음이지만 잘 다독이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자. 해야 할 일을 감사히 마주하고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집착하지 말자. 사랑하는 이와 존재하자, 이 순간에.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펑펑 울면서 살아야지.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려고 하느냐라는 생각을 했는가? 그렇다면 나다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다짐한다. 매 순간 나답게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