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면 당신에게 쓰는 편지

by 달숲

오늘 저녁은 젬베다! 다짜고짜 두괄식 문장에 놀라셨나요? 사실 독자님들 중 몇 명이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실까 싶어서 오늘은 처음부터 임팩트 있는 주제어를 꺼내보았습니다. 저는 젬베 수업을 들으러 왔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녁 6시 30분에 진행될 젬베 수업을 듣기 위해 마포구청역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2시 50분에 도착했으니 너무 빨리 왔나 싶긴 해요. 음, 지난달이었나요. 인간극장에 '문희와 이베' 편을 감명 깊게 보고 아프리카 음악에 흠뻑 빠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럴 때 저는 뭐랄까요. 돌진하는 황소와 같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죠. 아프리카 남자 이베 씨와 결혼한 한국인 여성 문희 씨의 블로그를 찾아내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습니다. 그날이 언제 오려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오늘이네요. 수업이 기대가 돼서 미리 도착한 이유도 있지만 원래 제 성격이 좀 이래요. 웬만하면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하는 편입니다. 유난히 제가 싫어하는 게 있거든요. 약속장소에 늦을 때 식은땀이 나며 아랫배가 싸악 아픈 그 느낌말이에요. 그 감정이 너무 불쾌해서 저는 차라리 미리 도착하는 방법을 택한답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심한 교통체증이 있어도 미리 도착할 정도로 부산을 떱니다. 그래서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해서 주변을 탐험하곤 하죠. 제게는 이 행위가 여행과도 같습니다. 느릿느릿 낯선 동네를 설레는 마음으로 어슬렁거리는 거죠. 아참, 우리 젬베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제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 이면에는 몹시 강한 외로움이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저만 그러려나요? 마음이 무거워지면 가벼운 마음으로 수다를 떨 의욕이 통 생기지를 않습니다. 원체 수다를 즐기지도 않지만요. 그런 이유로 저는 새로운 걸 배웁니다. 악기를 배운다거나 춤을 춘다거나, 손과 발을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 일을 택하지요. 사람들과 어울려 봉사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지난달엔 영등포 노숙자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봉사를 했어요. 집에서 부엌일을 전혀 하지 않는 제가 "혹시 요리 쪽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답니다. 엄마가 이 얘기를 듣는다면 배꼽 빠지게 웃겠지요. 8282 한국인답게 성격이 급해 재료를 신속하게 다듬었거든요. 아마 그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 달에도 가능하다면 봉사에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쓰기 모임과 음악감상회에도 참여하려 합니다. 이 모든 모임을 어떻게 알고 신청하는 거냐고 하루는 친구가 놀란 표정으로 제게 묻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떤 걸 찾는다기 보다는 필요한 모임이 쓱 다가와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지요. 인연이 다하면 그 관계는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인연은 뿌연 안개를 뚫고 제게 다가오기도 하지요. 저는 워낙 사람을 가려 사귀어서 몇 안 되는 사람만이 주변에 남았습니다. 아, 어제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어요. 저 포함 5명이 멤버인 이 모임은 저를 제외하고 모두 유부녀가 되었답니다. 의연하게 혼자임을 받아들이려 해도 각진 마음이 저를 콕콕 찌릅니다. 아직도 나는 혼자이구나. 근데 언제까지? 그런데 결혼을 하면 든든한 둘이 되는 걸까요? 그런 무조건적인 결론은 어쩐지 폭력적입니다. 인생이 늘 해피엔딩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갖지 못한 것은 좋아만 보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우리말 속담과 다른 쪽의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미국 속담처럼 나에게 없는 것은 늘 신비로워보이는 편이니까요. 그래서 결혼하는 친구의 모습이 못내 부러웠나 봅니다. 축하하는 마음속에 이렇게 쓸쓸하고도 연약한 마음이 자라나고 있다니. 인간이란 왜 이리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나저나 오래간만에 신은 구두여서 그런지 발에 물집이 잡혔습니다. 이 구두를 신고 소개팅도 자주 하고 모임도 더 나가야 하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그런 적극성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달콤한 결실은 없다! 라며 혼쭐 내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의 인연이라면,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 안개를 뚫고 나에게 올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웃긴 건 말이죠. 그 믿음 옆에 샴쌍둥이처럼 불신이 착 달라붙어 있답니다. 너는 혼자 고단하게, 철저히 외롭게 살다가 죽을 것이다...! 그런 못 말리는 생각말이죠. 그래서 저는 의연하다가도 돌연 온몸을 파르르 떨곤 한답니다. 통제하기 어려운 잡생각 때문에 저는 새로운 걸 배워야 합니다. 신선한 자극을 주입하다 보면 인생의 중심이 잡히거든요. 음, 뭐라 설명하긴 어렵습니다만 제 인생은 그렇게 설계된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즐겁게 젬베를 배울 것이고 리듬과 혼연일체 되어 걱정을 훨훨 날려버릴 작정입니다. 참 신기하지요? 작년에는 제 안에 써 내려갈 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되었거든요. 정말 진지하게 우려했지요. 그런데 올해는 웬일인지 할 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물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생각이긴 하지만요. 샤워를 할 때마다, 머리를 말릴 때마다 신록처럼 파릇파릇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키보드로 달려가서 모든 걸 뱉어내고 싶지만, 게으름을 피우는 바람에 전부를 털어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이 글감을 잘 보살펴 줄거라 믿기 때문이죠. 시나브로 익어간 글은 언젠가 세상에 나올 겁니다. 저는 저대로 계속 써 내려갈 거니까요. 여기까지 읽은 분이 단 한 분도 없다고 해도 그건 저의 영역이 아니니 이제는 신경 끄려 합니다. (사실 신경은 계속 쓰입니다)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이죠. '혼자인 게 싫어서, 억지로 어딘가에 끼워 맞추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정도가 될 겁니다. 인생은 하나의 실험인 거죠. 그런데 실험의 결과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과정이 중요할까요? 과학자라면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이건 인생 아니겠습니까? A가 틀렸다면 B를 시도해 보고, B마저도 틀렸다면 C를 찾아가는 과정이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아닌가,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늘은 젬베를 즐겁게 배워보겠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내일엔 내일 할 수 있는 시도를 해볼게요. 그렇게 계속해서 살다 보면 안개를 뚫고 무언가가, 그리고 누군가가 저를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제가 찾아가는 걸 수도 있겠죠. 뭐가 됐든 상관없습니다. 이제 편지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는데요. 근데 제 글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다면 정확히 보셨습니다. 저는 지금 안갯속에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이게 나의 현실이라면, 그저 받아들이고 써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 이제 저는 맞춤법 검사를 하고 이 글을 발행해 보겠습니다. 안갯속의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