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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쓰다 Feb 24. 2024

작품명: [삶을 살아내는 능력]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에세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가기"

<사진 출처: pixabay>

버킷리스트 항목이 하나 더 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메트) 미술관은 머릿속 상상만으로는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무한한 시공간처럼 느껴졌다.


작가 패트릭 브링리는 자신의 결혼식 날 형의 장례식을 치르고,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의 삶을 고립시킨다. 메트 미술관 밖은 거침없이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에게서 시간은 멈춘 듯이 보였다.


2장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                                                 - p.35


소제목에서 작가의 절절한 슬픔과 아픔이 느껴져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완벽한 고요함은 나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비로소 그때 나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울기도 하고 반성도 하고 다시 일어날 힘도 얻는다.

그 고요함을 안다.

 

머리와 몸은 일하고 있지만 마음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대신했다. 슬픔과 고통으로 뻥 뚫린 휑한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과 조각품들이 놓인 넓은 전시실은 어쩌면 작가의 마음처럼 텅 빈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하지만 차분하면서도 적막하기까지 한 미술관의 완벽한 고요함은 한없이 주저앉고 싶은 작가를 받아주고 다시 일으켜 주기에 충분히 너그러운 시공간이지 않았을까.


미술관에 가면 어느 때는 작품보다 그 속의 고요함에 더 매료되기도 한다. 드문드문 작품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때로는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을 움직인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림의 한 곳을 응시하거나 아니면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전체를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과 공간에 빠져든다. 사람이 별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일시에 시끄러웠던 주위가 고요해진다. 나와 그림만 있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그림에게 말을 건넨다. 답이 돌아올 때도 있고 감감무소식일 때도 있다. 말 거는 게 귀찮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쳐다만 본다. 고요함에 빠져 나를 잊을 때도 있다. 사실 이때가 가장 좋다. 그림으로 나를 치유하는 시간. 어떤 해설도 분석도 필요 없는 시간과 그 시간이 존재하는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화되기도 하고 새로운 힘이 솟기도 한다.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 p.256


완벽하게 고요한 미술관에서 작가는 뻥 뚫린 마음을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작가부터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의 알려진 작품들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 자신과 같은 푸른 제복을 입은 동료들, 무수히 많은 관람객과 스치며 또는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형체가 보이는 않는 무언가로 서서히 채워간다. 오롯이 작품들을 바라보고 빠져들었던 것에서 이제는 경비 일에 적응을 한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다른 생각이 기꺼이 끼어들게 허용했고,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생각도 할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스스로 인정하기는 싫지만 점점 죽은 형을 향한 슬픔과 상실감이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메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첫 몇 달을 돌이켜보면 내가 한때 날이면 날마다 말없이 뭔가를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를 그토록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아마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날마다 수많은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요즘 같아서는 그렇게 뭔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더 이상 처음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                   - p.269


아내와 결혼한 지, 형이 죽은 지 5년이 지난 후, 그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이제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고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두 아이로 인해 정신없는 삶은 오히려 그에게 살아가야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마치 직장에서의 삶이 고단해도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는 남편들, 경단녀로 집안일과 육아에 찌들어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는 전업주부, 또는 일하면서 육아에 집안일까지 하느라 종종걸음으로 버텨내는 워킹맘들의 삶,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팍팍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들은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다. 오로지 살아나가야 할 삶만이 있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메트에 왔을 때보다 편안해 보인다. 힘들지만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이 예전부터 표현했고 지금까지도 작품에 담아내려고 부단히 애쓰는 소재이자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드디어 10년째 되던 해 작가는 메트 미술관이라는 고요하고 정돈된, 완벽한 직장을 그만둔다. 도보여행 가이드로 바깥세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비로소 미술관 밖으로 나가게 된다.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 p.320


10년 전, 배치된 구역에 처음 섰을 때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 p.325


작가는 또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대해 말하면서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매우 감사하며 자신의 이야기가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형의 죽음은 계속 남아있는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중심으로 그대로 서 있지 않고 자신의 삶이 중심이 되어 살겠다는 작가의 달라진 모습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에게는 삶을 살아나간다는 말보다 삶을 살아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순간 갑자기 작가에게 짧은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패트릭 브링리 씨, 잘 지내고 있죠?
비록 활자로 만났지만 처음 메트에서 그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이 우두커니 서서 그림을 바라보던 당신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감내하기 힘든 슬픔으로 마음이 멈춰버린 시간을 메트의 작품들과 공존하며 그 공간 속에서의 삶을 잘 살아내, 드디어 인생의 한 부분을 마무리 짓고 떠난 당신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여느 예술가들 못지않게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변화 없는 일을 묵묵히 해내며 결국 당신만의 방식으로 마음에 그림을 그려 넣고 생각을 빚고 조각해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당신을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당신이 근무했던 그곳에 갈 수 있기를 고대하며, 진정한 예술가는 미술관에도 있지만 우리 주위에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브링리 씨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시금 미술작품이 우리 삶에 윤활유 역할도 하고 위안과 희망을 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니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근처에 미술관이 있다면 잠시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미술 관련 지식이 없어도, 그림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미술관 문 옆 난간에 기대 테이크아웃 커피를 홀짝이며 사람구경만 해도 내 삶에 점하나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주위에 미술관이 없어도 괜찮다. 공원을 산책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창밖 풍경을 통해 마음에 쉼을 주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 자체가 각자의 인생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이자 삶이다.

<사진: pixabay>


오늘 인생 미술관에 전시될 삶을 살아내기 위해

기분전환 겸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해야겠다.


작품명을 뭐라고 할까?





*상단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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