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업사이클 좋아한다고 창업할 수 있을까
나는 도예를 30년 가까이 했어.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지. 하다보니 더 잘하고싶은 욕심도 생겨서 공부를 시작했어.
그러다가 내 작품을 만들어서 축제에 나갔지.
잘 되는 날도 있고 안되는 날도 있었지.
그런데 나도 예상치 못하게 많은 돈을 벌게 되니까 더 재밌어지는거야.
이젠 이렇게 하고 싶었던 카페랑 공방도 만들게되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살았네
- 김영희 도예가
얼마전 우연히 들어간 찻집에서 30년 경력의 도예가를 만났다.
그녀와의 대화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 나아가 창업을 한다는 것이 어떤 과정인지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어졌다는 점에서 내게 중요한 귀감이 됐다.
좋아하는 일로 창업을 한다는것, 상상이나 가능한 일일까?
아직 좋아하는게 뭔지 찾고 있는데 창업까지 생각한다니, 성급한 고민일까?
하지만 김영희 도예가 처럼 나도 좋아하는 일로 내 공방을 만들고 돈을 벌고 싶었다.
내가 창업에 있어 궁금한 분야는 '업사이클'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느린 과정의 업사이클로 창업을 해낸 사람들은 어떤 구체적인 고민과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르게 됐을까? 업사이클이라는 가치를 상품으로 판매했을 때 생기는 딜레마는 없을까? 현재 업사이클 시장은 어떤 상황이며 업사이클 브랜드들은 어떤 활동들은 하고 있을까?
나는 창업과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업사이클 브랜드와 굿즈 브랜드 공부를 하고, 관련 자료를 리서치했다. 그 과정에서 특히 2008년부터 한국에서 업사이클과 관련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어온 터치포굿의 자료를 많이 참고하게 됐다.
1. 생산: 현수막을 가지고 대량 생산을 할 경우 현수막을 원단화 해두고 2주 안에 최대 5000개를 만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장비를 더 구입하고 꾸준히 장비를 함께 개발해나가며 공정의 인력이나 시간을 줄였다고 한다.
2. 원가 계산: 원가 계산을 잘 해야했다고 했다. 500개, 1000개를 판매할 때 판매 계산이 틀리면 오히려 물품을 판매할 수록 마이너스가 발생한다고 한다. 운송비, 세척비, 인건비, 임대비 등 원가 항목을 세분화해서 분석해야한다고 한다.
3. 영업: 처음엔 지인 통해 판매. 그러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인에게 피드백을 최대한 듣고, 이후 모든 행사를 나가서 열심히 판매했다고 한다.
4. 아이템 선정: 터치포굿의 경우 개인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지 않는다. 그 시기의 트랜드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선정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은 대체로 10 중 1 정도 밖에 판매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 예쁘고 오래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려고 지향한다.
좋아하는 일을 팔리는 브랜드로 만드는 법 -터치포굿 박인희 이사 인터뷰 중
쓰레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터치포굿 박미현 대표는 "문제를 개선하려면 가장 먼저 산업쓰레기를 생산해내는 기업들이 변해야 한다."고 한다.
터치포굿은 기업들에 ‘산업 쓰레기 처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 외에도 도시형 생태교육, 업사이클 연구소 등을 운영한다. 연구소는 어떤 기업이 어떤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는지, 재처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과정을 연구한다.
터치포굿 대표에 따르면, 2012년 13년에는 업사이클링 브랜드가 많이 생겨났다. 5년전만 해도 그 수가 50개 가량이 된다고 한다. 업사이클 창업은 단순히 업사이클 제품만을 판매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넘어 폐기물이 어디서 발생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경로를 파악하고, 이를 순환 구조로 만들어내는 광범위한 활동을 포함한다. 더불어 업사이클이라는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교육 등의 여러가지 활동을 포함한다.
이쯤 보니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는 것과 창업을 하는 것은 너무도 그 농도가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알겠다. 스케일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나는 자신의 굿즈 브랜드를 구축하고 업사이클 창업을 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다시 생각해봤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톺아보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찾는데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창업을 하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규칙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지즈 강연 중, 터치포굿 박인희 이사
창업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많고 길게 보고 가야한다. 아무래도 10년의 인권활동으로 몸이 아픈 내게 창업은 넘을 수 없는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판매할 수 있다면 업사이클 상품 그 자체보다도 업사이클이라는 행위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우여곡절의 과정을 판매하는 것일테다. 예를 들어 업사이클 관련 책을 만든다거나, 업사이클 경험을 소소하게 나누며 같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보는 모임을 만든다거나..
최근 인스타그램의 바다생각(_thinkbada)이라는 모임을 즐겨 보고 있다. 헌 옷을 업사이클 하거나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위한 실천들을 소소하게 공유하고 나누는 모임이다. 그런 과정에서 옷짓는 클래스를 열거나 멸종위기종의 소식을 나누기도 한다. 나는 아무래도 업사이클이라는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작당을 하는게 더 재밌을 듯하다! 이로써 창업을 잠시 엿봤던 마음을 접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