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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두치 Oct 30. 2021

다큐멘터리 제작 도전기

#15. 덕업일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비틀기



인권활동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 있다면 세상의 많은 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고양이  마리가 살고 있다. 나는  고양이와 고양이가 처한 환경을 나도 모르게 불편하게 바라보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고양이는 태어나 3살까지 집고양이로 살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며 쥐잡이 생활을 시작했다. 점점 고양이와 나의 관계가 생기고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누구도 고양이의 삶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고양이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이 어떤 수수께끼를 풀어가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내 문제의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다큐 제작은 시작되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작업이다.


함께 다큐멘터리 미디액트에서 제작을 실습하고 있는 동료들이 나눴던 이야기라고 한다. 나는  고양이와 나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고양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에 따라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녹화버튼을 누르는 것이 촬영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언어를. 영상언어를 고민하는 것이다. 영상을 어떤 구도로 촬영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영상언어의 관습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영상언어라는 말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컷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촬영할 때 필요하다. - 김수목, 사회적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실로 다큐를 제작하며 고양이가 처한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이 다큐가 왜 필요한지를 묻게 됐다.


여전히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 관객의 자리를 만드는  중요하단  알았다.



미디액트 동료가 공유해준 기막힌 짤



다큐멘터리는 제작 과정에서 돌발상황이 많이 일어난다. 기획안이 나와도 실제로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다. 설사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내가 주제로 담고 있는 이야기는 지금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계속 내용이 변할  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가장 고민이 됐던 점은  작업이 '다큐멘터리를 둘러싸고 있는 등장인물들과 주변 관계에 이 다큐멘터리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계의 역동과 외부 환경, 새로운 상황에서의 다큐멘터리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다 머리가 터져 혼란이  지경이었다.


 개에 가까운 촬영본을 하나하나 보고 어떤 내용의 영상인지에 대해 리스트를 정리하는 것만도  달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이미  촬영된 파일을 바탕으로 구성안을 다시 수정하고 각각의 순서에 맞게 다시 영상을 배치하고..     직조한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 사용되는 표현이지 않을까? 다큐멘터리와 영상물을 만들어내는 모든 사람들에 존경과 경외가 생긴다.



스토리 무브먼트와 임팩트 시네마


나는 오랫동안 사회변화를 위한 활동을 해오며 어떤 한계에 봉착하곤 했다. 사람들의 신념 체계는 너무나 견고해서 왠만한 활동으로는 잘 움직이기가 어렵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장르는 '감정적인 연결(긍정적 공감 혹은 부정적 두려움 등)'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이야기를 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대중의 참여를 영화를 통해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수반될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해보자. 덕업일치는 가능한가?



사실 덕업일치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도전하고 고민해온 주제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아무리 재미있는 일도, 좋아하는 일도 돈 버는 일이 돼버리면 재미가 뚝 떨어진다. 나 또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10년간 해왔기 때문에, 단순히 '덕업일치'가 즐거운 일들로만 가득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1%의 사람인 저 같은 사람도, 제 일의 80% 이상은 하기 싫은 일이에요. 꿈은 절대 위치나 직업이 되면 안 돼요. 꿈과 목표는 '신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쉽게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박진영 시선 뉴스 인터뷰 중

박진영의 인터뷰를 보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나도 모르게 '어떻게'인 how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쯤 다시 한번 꺼내보는 표. 내가 좋아하는 '것'들.jpg


덕업일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어떤 가치를 좋아하는가? 어떤 가치를 실현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번뿐인  삶을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데 쏟아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꿔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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