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느긋하게 잠든 토끼처럼
실패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많이 해 본 사람일수록 성공할 확률도 높다. 그만큼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네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계속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무엇이든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잘되고 못되고는 그다음 문제다.
- 한성희,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2020년 여름, 인스타툰 시장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아직 레드오션은 아니던 시기였다. 웹툰을 즐겨 보던 나는 문득 ‘나도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보건실에서 벌어지는 우당탕탕한 일상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고, 마침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기에 망설임 없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둥글둥글한 코와 푸근한 얼굴을 가진 토끼 캐릭터를 만들고, ‘달토’라는 이름을 붙였다. 다른 작가들을 따라 특허 등록도 하고, 나만의 첫 캐릭터에 애정을 듬뿍 쏟았다. 보건실 이야기는 차고 넘쳤다. 이제 그림만 그리고 업로드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의 ‘완벽주의’였다.
SNS에 올리는 그림과 글이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할지라도,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진심을 다하지 않은 게시물은 차마 업로드할 수 없었다. 하나의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수없이 수정하고 망설이다 보면 어느새 하루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로서의 나는, 완벽한 그림을 가끔 올리는 작가보다 다소 미완성 같아 보여도 꾸준히 업로드하는 작가를 더 좋아했다.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알고 있었지만, 따르지 못했다.
완벽주의의 결과는 처참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5년 동안 업로드한 게시물은 고작 40여 개. 팔로워가 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자주 업로드하고 소통할수록 노출이 많아지는 SNS의 특성을 나 스스로 차단한 셈이었다. 돌아보면 아무도 내게 완성도를 요구한 적 없었다. 애초에 ‘완벽’이란 게 가능하지도 않았다.
같은 시기에 시작했던 누군가는 벌써 책을 두세 권 출간했고, 나보다 팔로워가 적었던 사람도 이제는 수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작가가 되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작업해 온 이들의 그림 실력과 영상 편집 실력은 어느새 부쩍 성장해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 시간이 얼마나 오래 멈춰 있었는지.
문득 떠오른 건 어릴 적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느긋하게 잠든 토끼가 아니었다. 머릿속으론 달리고 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뛸 수 없었던, 스스로 멈춰 선 토끼였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중 마주한 짧은 글귀가 뜻밖에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여러분이 여태껏 써온 글이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겠지만요. 사실은 거지 보따리 안에 든 보잘것없는 쓰레기입니다. 여러분, 거지 보따리를 버리고 이제부터 새로 시작해 봅시다.” 문장을 지우며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마저 글을 쓰는 과정이니까요.
- 이주윤,『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내 작품이 형편없다고 단정 짓는 문장이 이상하게도 후련하게 느껴졌다.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완벽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옭아매던 나에게,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일이 오히려 위안이자 힘이 되었다.
세상 누구도 내 일상에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내 그림을 재미없어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가. 나는 콘티를 구상하는 과정이 즐겁고 그림을 그리는 게 재미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면 가끔 나를 보는 듯한 아이들을 만난다.
어느 날 보건수업 시간, ‘내 몸과 마음 소중히 여기기’ 활동을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다 선이 조금만 삐뚤어져도 얼굴을 찡그렸다. 몇 번이나 지우개로 문질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결국 도화지를 쫙쫙 찢어버렸다. 선 하나가 비뚤어졌을 뿐인데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며 속상해했다.
“이대로도 괜찮아.” 나는 다독였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울상을 지었다. “선이 삐뚤면 싫어요.”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선이 조금 삐뚤어져도 괜찮다고.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으며,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배움의 일부라고.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자라서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고 말 테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실패를 통해 얻은 경험과 피드백은 다음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적어도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겠지. 그러니까 일단 용기 내서 도전해 봐!”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난날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고 다시 펜을 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하고 성실하게만 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거북이와 경주하던 토끼처럼 잠시 나무 아래에서 쉬어갈 수도 있고, 때로는 깊은 잠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한 방향으로 걷는 걸 멈추지 않기로 했다. 그저 걷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