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풍경 속에서
지난 토요일, 나는 '리틀 산타 프로젝트'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70명의 어린이가 작은 산타가 되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고,
그 마음이 모여 소아암 환우에게 전달되는 따뜻한 행사다.
지인이 "같이 해볼래?"라고 물었을 때, 굳이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취지가 마음에 들었고, 주말도 비어 있었고, 무엇보다 궁금했다.
그래서 원주에서 서울까지, 그냥 슝- 떠났다.
내 첫 번째 역할은 유리창에 아크릴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무엇을 그리면 좋을까.
리틀 산타 프로젝트이니, 산타는 꼭 들어가야겠지.
유리창 위에 산타 모자의 둥근 솜을 스윽 그려 넣는 순간이었다.
문득, 시야에 한 분이 들어왔다.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던 한 어르신이
창문 안쪽에서 만들어지는 산타를 바라보며 걸음을 멈춘 것이다.
형광빛 주황색 조끼에
그리 두껍지 않아 보이는 바지 차림.
리어카에는 커다란 종이 상자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얼마나 이곳저곳을 다니신 걸까.
그 바쁜 발걸음이 멈출 거라곤 예상하지 못해
나도 모르게 손이 잠시 멎었다.
그분이 서 계신 곳은 인도가 아니라 차도였다.
우리는 투명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나는 금세 떠나실 거라 생각했다.
그림이란 건 대개 잠깐 흘끗 보고 지나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분은
리어카 손잡이를 잡은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서서
산타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자가 생기고,
웃는 눈이 생기고,
둥근 코와 풍성한 수염이 그려지고,
두 팔을 활짝 든 몸이 만들어질 때까지-
고개를 돌린 자세도
리어카를 붙잡은 손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괜히 민망해져 몸이 먼저 반응하는 편이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그날은 마주 본 채로,
아무 말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슬쩍 웃어 보기도 하고,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그분의 표정은 어떤 하나의 감정으로는 묶기 어려웠다.
마치 내가 아니라
그림 너머의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길게 잡아도 5분 남짓한 시간.
뒤에서 차가 다가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멈춰 서 있던 그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산타가 그려지던 그 장면에서
그분은 무엇을 보고 있었고,
무엇을 떠올렸을까.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였을까.
기다리던 누군가의 얼굴이었을까.
자식이나 손주의 웃음이었을까.
아니면 한때 품었지만,
아직 말로 꺼내지지 않은 마음들-
미술을 하고 싶었던 마음,
선물을 기다리던 마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조용히 바라보고 싶었을 뿐.
비로소 산타가 완성되고 나서야
그분은 시선을 거두고
다시 리어카를 밀며 사라졌다.
나는 스태프로 일한 8시간 동안
수많은 아이들, 프로그램, 웃음과 북적임 속에 있었지만,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건
그 아주 짧게 마주한 시간이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단순한 그림 하나에
온전히 시선을 맡기던 모습이,
문득 멈춰 선 한 사람의 시간이
유난히 깊은 여운으로 남았다.
그날의 산타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건네기보다는
잠시 멈춰 설 이유를 건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쩐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적을 본 듯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