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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Jun 06. 2017

스톤타운 골목길의 폭주기관차

소시민적 아프리카 ep.15


 어디로 길을 들던 헤매게 되어 있는 골목길이었다. 눈을 어디로 돌려도 독특한 탓에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우리가 헤매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유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렇지 않았었다. 분명 이렇게까지 꼬인 길이 아니었다.

 시작은 창대했다. 잔지바르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잔지바르 커피 하우스'에 가서 시원한 커피를 한 잔 할 요량이었다. 덥긴 했지만 골목골목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기에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김남편이 화장실통(痛)을 호소하기 전까지는.



 땀과 식은땀을 섞어 흘리고 있는 김남편의 상태는 모른 채, 나는 평화로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와- 저 골목 사진 찍으면 되게 예쁠 것 같아-

 결국 참다못한 김남편이 SOS 신호를 보냈다. "나는 지금 당장 화장실에 가야겠다."



 이전에도 길을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더욱 절박하게 눈에 불을 켜고 길을 찾았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전까지 못 찾던 길을 갑자기 번쩍 하고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여행을 시작하고서 줄곧 같은 음식을 같은 시간에 먹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김남편만 이 사달이 난단 말인가.

 문득 호텔에서 먹은 조식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김남편이 타 먹던 시리얼이. 평소에 우유에 시리얼을 타 먹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터라 김남편이 먹기에 그러려니 하고 쳐다만 보았는데, 아무래도 그 시리얼을 타 먹은 우유가 문제인 것 같았다.

 김남편의 눈 속에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는지 무엇을 보는지 알 수 없는 그 눈동자... 마음이 급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정말 정말 큰 문제가 벌어진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문제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분명 이 근처 어디쯤인데,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빙빙 돌기를 몇 바퀴째. 혹시나 싶어 들어간 골목 끝에 드디어 잔지바르 커피 하우스가 보였다. 한 골목만 지나쳐 들어갔더라면 바로 보였을 것을, 그걸 모르고 지나갔던 골목만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살았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였다.

 내가 커피를 주문하는 사이 이미 김남편은 혼자만의 명상의 시간을 가지러 화장실로 떠나버렸다. 커피를 받아 들고 겨우 남은 두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으니 김남편이 돌아왔다. 한결 행복해진 얼굴이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돌아본 잔지바르 커피 하우스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호황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객이 여러 말씨로 대화를 나누며 시원한 에어컨과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카페 위층으로는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숙객이 섞여 더욱더 붐비기도 했다.

 그 틈바구니에 끼어 한가로이 커피를 마셨다. 우유로 그 고생을 했으면서도 또 아이스 라떼를 시킨 우리도 참 미련했지만, 커피는 놀랍게도 맛있었다.(다행히 이번 우유는 아무 탈이 없었다.)

 이 카페에는 비록 느리긴 했지만 제법 안정적인 와이파이 신호가 있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전날 야시장에서 만났던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반반이었다. 이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우리끼리 무언가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도 상관없었으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짧게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 후, 10분 후 만나기로 했다. 부랴부랴 호텔로 돌아가 미리 맡겨두었던 짐을 챙겨 나왔다. 약속 장소로 향하면서도 내심 긴장이 되었다. 예정에 없던 사람들을 만나 예정에 없던 행선지로 떠나는 건 우리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누군가 쨍한 햇볕에 아무렇게나 던져 말리는 중인 빨래를 쳐다보며 다리를 달달 떨었다. 우리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호의에서 호의로




 거짓말 같았다. 우리는 지나가듯 '만나 지면' 같이 떠나자던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일행분들은 8인승 차량을 몰고 왔다. 이미 그들이 가져온 짐이 가득 들어차 있었기에 우리 캐리어를 넣을 땐 떨어지지 않도록 겨우겨우 밀어 넣어야 했다. 차에 우리 몸까지 같이 욱여넣고 곧장 출발했다. 운전을 맡은 현지 일꾼 한 명을 포함해 우리까지 딱 여덟 명. 완전 만차였다.

 그러고 보니 서로 통성명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일행의 대장님은 산타클로스 같은 수염을 기른 목사님이셨다. 목사님의 사모님은 한국에 계실 때 모 방송국 공채 성우셨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나이에 비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분이셨다. 모델 지망생인 두 분의 아드님과(유일하게 우리 또래였다), 출장 차 왔다는 구호단체 대표님 한 분, 사업가 한 분까지 한국에서라면 좀체 인연이 없었을 듯한 조합이었다.

 창밖으로는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구호단체 대표님이 Jambo-일반적인 스와힐리어 인사-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사모님이 Jambo라는 말로 시작하는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흥겨웠다.

 노랫소리와 함께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키웽와 해변이었다.



 숙박객이 아닌 경우에는 인당 일정한 금액을 내면 수영장, 뷔페, 프라이빗 비치까지 이용할 수 있는 리조트였다.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조차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웠지만, 서양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한 곳인지 다들 선베드를 하나씩 차지하고 누워 책을 읽거나 태닝 중이었다.

 우리는 우선 뷔페부터 이용했다. 구호단체 대표님이 곧장 돼지고기 앞으로 가 줄을 서며 얼른 오라고 손짓했다. 아이 같은 면이 있으시네,라고 생각했는데 이슬람이 90%가 넘는 잔지바르에서 돼지고기란 상당히 귀한 것인 모양이었다.

 리조트 뷔페답게 훌륭한 식사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주섬주섬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고 하자 목사님 일행이 우리를 만류했다. 가격이 꽤 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죄송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더니, 여기서 받았다고 생각하시고 한국으로 돌아가 좋은 일에 보태시라며 끝까지 우리를 말리셨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주는 것에도, 받는 것에도 익숙하지 못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험한 꼴을 당하기도 했지만 마치 그 보상처럼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계산을 마친 목사님 일행이 먼저 에메랄드 빛 바다로 몸을 던졌다. 우리도 질세라 선크림을 치덕치덕 바르고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생각보다 깊은 바다였다. 파도가 제법 강해서, 한 번 파도가 칠 때마다 해안가까지 밀려나 버리기 일쑤였다.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바닷물을 먹으면서도 자꾸 바다로 돌진했다. 선크림을 아주 듬뿍 발랐다고 생각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바다에서 나오자 목 뒤부터 까매진 김남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영장에 몸을 담근 목사님 일행이 바다 수영할 만큼 했으면 소금기 빼러 수영장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그건 아주 옳은 충고였다. 김남편이나 나나 거의 소금 절임이었다.

 자리에서 물에 뜨려고 씨름하는 나는 못 본 체 하고, 김남편은 목사님 일행과 대화를 나누었다. 짧게나마 이곳 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전기가 오락가락해서 냉장고 속 음식이 다 상해버린 이야기나, 사 먹는 물이라도 100% 믿지 못해서 너무 싼 물은 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나중에는 말라리아에 관한 얘기도 들려주셨는데, 실제로 두 번가량 걸려 생사를 오가기도 하셨다고 했다. 자랑스럽게 한국에서 말라리아 예방 약을 처방받아 이미 먹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한국 약은 효과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며 이러저러한 초기 증상이 있을 땐 빨리 현지 병원을 찾으라고 하셨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었다.


 수영장에서 나와 샤워를 하고 말끔한, 그러나 한결 까매진 얼굴로 다시 차에 올랐다. 고맙게도 우리 목적지인 능귀 해변까지 바래다주신다고 했다. 키웽와에서 능귀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수영인지 사투인지 모를 몸짓이 꽤 피곤했던 건지 이내 좁은 차 안에서 곯아떨어져 버렸다. 아무래도 이 호의를 갚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돌아가면 정기 후원을 하나 더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떴을 땐 길었던 아프리카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인 능귀 해변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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