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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Jan 14. 2024

한국이 싫어서는 아니고

자발적 이방인


2017년 중순, 지인의 추천으로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한참 호주로의 유학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였고 그 지인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소설임을 감안하면 당시 기준으로 꽤나 정확하게 이민 프로세스를 담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주인공 “계나”의 심정이 1인칭으로 이야기하듯 서술되어 있어서 술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터라 계나에게 스스로를 투영하며 알지 알지, 내가 이 심정 잘 알지! 를 연방 외쳐대며 읽었더랬다.




대기업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설명해 주던 나의 삶은 매일매일 통근버스에 실려 하루에 매일같이 2~3시간을 길 위에 버리고 퇴근 후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남지 않아 대충 음식을 시켜 먹으며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몰아자느라 오후가 되어야 일어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답답하게 했던 것은 꽉 막힌 조직문화, 보고를 위한 보고, 일방적인 경영진의 결정과 그 안에서 부품이 되어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개인의 삶이었다. 기혼자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미래는 더욱더 답답해 보였다. 먼저 길을 걸어간 여성 선배님들은 더 좋지 않은 시절을 겪어내고 그 자리에 서계시는 것이었으며 어딘가 모르게 늘 피로해 보였다. 가정에 소홀하면 소홀한 대로, 가정에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려 하면 하는 대로, 어느 쪽이든 피로해 보였다. 심지어 결혼을 하지 않고 차장, 부장급에 계시던 여성 선배님들에게는 언제나 ”아~ 결혼 안 한 그 분?“ 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따라붙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막다른 길인 것만 같은 느낌에 숨이 막혀왔다.

사실 적어도 내가 겪었던 조직사회는 분명히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조직 안의 일원이었던 내가 느끼기에 그 속도는 너무나 느렸다. 내가 이 조직에 있는 동안 무언가가 바뀔 거라는 기대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속도였다.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는 변화를 기다리기도, 앞장서서 바꿔갈 자신도 없었던 나는 그만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해 버렸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싫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내가 느낀 감정은 복잡 다양했다. 여전히 나는 한국의 많은 점을 사랑했고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만든 추억을 사랑했다. 누군가 한국에 대해 안 좋은 말이라도 할라치면 내 안에 있는 애국심이 분연히 일어나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는 A라는 어려움을 직면하는 대신 B라는 어려움으로 치환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어려움에 경중이 어디 있으랴. 어디에서나 삶은 삶이고 감당해야 할 몫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나고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자발적으로 이방인이 되기를 택했다. 비행기로 10시간이 걸리는 이곳에서 말이다.


브런치를 개설하면서부터 자기소개글에 적었던 ‘언젠가 편도 티켓을 끊어 떠나는 것이 꿈입니다.’는 그렇게 현실이 되었고 내가 호주에서 지낸 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나는 호주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졸업한 분야로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으며 영주권을 취득했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제법 여유로워서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그래사 그때의 내가 견디기 버거워 도망치듯 버리고 온 것들을 반추해 본다. 반대로 그 결과로 내가 손에 쥐게 된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무려 6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017년 8월, 마지막으로 적었던 글에서처럼 나는 여전히 아주 긴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먼 곳에서 드디어 마음의 평안을 찾아 별 일 아닌 소시민의 생각들을 쏟아낼 시간과 여유를 찾아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가운데에 낀 내가 적어 내려 갈 별 것 아닌 이방인의 일지이자 소시민의 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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