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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 Jul 07. 2016

케이프타운에서의 사소한 문제들

소시민적 아프리카 ep.01


 아프리카로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주로 들었던 말은 다음과 같다.


 1. 왜 아프리카로 갔어?

 2. 혹시 선교하러 갔어?

 3. 멀리 오래갈 거면 차라리 유럽 가지 그랬어?


 대체적으로 위와 같은 평가는, 아프리카가 매우 넓은 대륙이고 그만큼 다양한 매력이 있다는 걸 모르기에 오는 반응들이다. 꽃보다 청춘 시리즈로 이전보다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프리카 대륙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는 미지의 땅이다.


 떠오르는 이미지라고 하면 기근, 가난, 더위, 독재 등 부정적인 키워드가 대다수일 텐데,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첫 번째로 방문한 도시인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은 위의 키워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주차의 문제





 당장 나조차도 시뻘건 대륙을 생각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류를 삼킬 듯 이글거리는 대지 같은 이미지를 말이다.

 그러나 이를 비웃듯 넓은 땅은 수많은 초록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남국의 휴양지를 온 것 같았다.(남아공이 실제로 심히 남쪽에 있기는 하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어디서든 보이는 테이블 마운틴의 풍광도 휴양지적 느낌에 한몫을 더했다.


 잘 닦인 직선도로를 달리면 기분이 뻥 뚫리게 마련인데, 하물며 옆을 스쳐 지나가는 배경이 테이블 마운틴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마음껏 경치 감상을 즐겼지만 김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목보다 솟은 어깨, 잔뜩 앙다문 입,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삐질삐질 흐르는 땀 등은 김남편이 얼마나 긴장하고 운전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최후의 결전 상대는 주차였다. 아니, 그전에 일단 해치워야 할 주차의 부하가 있었으니, 바로 주차권 뽑기였다. 아무리 팔을 뻗어도 주차권 발권기까지 손이 닿지 않는 안타까운 사연을 뒤로하고 결국 조수석에 있던 내가 차에서 내려 주차권을 뽑아야 했다.


 이 먼 곳까지 날아와서 주차 때문에 이 난리라니 웃음이 나왔다. 김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데굴데굴 구를 기세로 한참을 웃었다.



 고생 끝에 차를 주차하고 내린 곳은 케이프타운의 쇼핑 복합 공간 '워터프론트'였다. 특히나 이곳은 밤에도 치안이 확보된 편이라 수많은 여행객들이 다녀간다고 했다.

 특별히 쇼핑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고-실은 주머니 사정이 박복한 것일 뿐이다-체크인까지 남은 시간을 적당히 때우겠다는 목적이 더 강했다.


 내리자마자 따가운 햇살이 정수리를 태울 기세로 내리 꽂혔다. 지구 남쪽의 햇살은 이런 것이로구나.





커피의 문제





 워터프론트는 어떤 의미로는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한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쉈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서울인지 도하인지 케이프타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워터프론트를 오가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여유로운 여행객처럼 보였다. 눈이 마주치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서양인 특유의 매너였다.



 유일하게 '아프리카스럽다'고 생각했던 건 관람차 앞에 자리 잡은 악기 연주자들이었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한 장르였다. 어깨가 자동으로 들썩이게 되는, 시쳇말로 '그루브'있는 음악이었다. 더 듣다간 김남편이 스테이지로 나갈 기세였기 때문에 자제시키고 커피나 마시기로 했다.



 내심 기대했다. 커피 하면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커피 아닌가.

 케냐, 에티오피아 등 한 번씩은 들어봄직한 커피콩들이 아프리카 출신들이니 이 곳에서 먹는 커피의 풍미가 어떨지 무척 기대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생각하며 주문했는데 프라푸치노스러운 음료가 나왔다. 고개를 조금 갸웃하긴 했지만 내가 잘못 주문한 거겠거니 했다.

 때때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차라리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이 주간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커피를 못 마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잠시 속이기로 했다. 아닐 거야.





주차의 문제, 아니 차의 문제





 워터프론트를 나오며 사람은 뙤약볕 아래서 자고, 갈매기는 그늘에 앉아서 쉬는 요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더구나 갈매기가 다리를 감추고 앉아있는 걸 처음 봐서 왠지 모를 흥분에 휩싸인 나는 연신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러던 중 우리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주차비 정산이었다. 주차가 정말 끝까지 애 먹인다.

 어디에서 정산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주차된 곳까지 나와보기까지 하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겨우 자동 정산기를 찾았다.



 김남편에게는 아주 사소한 병이 있는데, 바로 '당황성 땀 흘리기'다.

 주차권 정산소를 찾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하자 김남편의 땀샘은 그야말로 폭발해 버렸다. 본인은 더위 탓이라 주장했지만 백 퍼센트 신뢰하지는 못할 말이다.




 워터프론트에서 숙소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금방 옷을 갈아입고 희망봉으로 출발했다.

 아니 출발 못했다. 이번엔 시동이 안 걸린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데 억지로 시도하자 렌터카는 우렁찬 경고음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청각적 공포감 조성에 아주 큰 보탬이 되었다.


 알고 보니 핸들이 지나치게 돌아가 있어서 그런 거였다. 초보 운전자와 무면허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보아도 알 겨를이 없는 문제였다.

 숙소에 묵고 있는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문제를 해결하고 출발할 수 있었다.





시간의 문제





 절경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풍경은 고개 돌리는 곳 어디에나 있었다. 예전에 남진 선생님이 부르짖던 '그림 같은 집'이 곳곳에 지어져 있었다.

 

 이 곳, 남아공의 대표적인 사회 문제 중 하나는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불평등이라고 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분리정책이 폐기된 지 20년도 넘었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소수의 백인들이 부와 명예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반면 대다수의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과 노동 착취 등으로 고통받는다.

 그래서일까. 꿈에라도 부러울 대저택이지만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파르트헤이트 : 원래는 격리 또는 분리를 뜻하는 아프리칸스어로,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남아공의 극단적 인종차별정책과 제도를 뜻한다. 이를 철폐한 것이 바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다.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희망봉으로 향하던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 아름다운 헛베이(Hout Bay) 해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잔잔한 파도가 쉴 새 없이 고운 모래를 바다로 실어 날랐다. 거짓말처럼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주인을 따라 산책 나온 개들은 저들만의 언어로 컹컹 짖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꿈속의 장면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들떴다.


일단 신혼이긴 하니까 이런 낯부끄러운 짓 좀 하고 갑시다.


 희망봉을 가는 길에 잠깐 들리려고 한 것이었는데 너무 좋은 나머지 쉽사리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완벽한 순간이다,라고 생각했다. 이걸 이렇게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니 이만한 여행이 또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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