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탄생하며 삶의 한없는 즐거움과 고통이 시작되었다. 희노애락의 손익계산서는 적당한 균형으로 수렴할진대, 이 시작점을 기념하고 즐거워하는 데에는 삶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념은 그 자체로 삶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이다. 긍정하기에, 그리고 긍정하기 위해 우리는 생일을 축하한다.
8월의 생일이란 오묘한 시기이다. 결코 손쉬운 시기는 아닐 것이다. 수십년 전의 이 날, 부모님은 에어컨이 잘 보급되지 않은 병원의 찌는 듯한 공간에서 사력을 다하셨을 것이다. 그 출산의 고통을 딛고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나와 성장해 나가고 주관을 가지고, 나름의 삶을 살아갔다. 떄때로 생일이 되면, 하나의 육체가 분열하여 다른 존재가 되어 상호작용하는 이 모든 생의 역사가 흥미롭게 느껴진다. 본디 하나였고, 모든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어떤 종교의 가르침이 떠오르기도 한다.
얄궂게도 가까운 분의 가족 상이 있었던 주간이기도 했다. 장례식장은 마무리의 공간이고 떠나보내는 시간이다. 생일의 색깔이 다채로운 장식이라면 장례식은 무채색이다. 살아가면서 발산하는 다채로운 것들이 결국 모든것을 품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수렴한다. 그 수렴의 시간을 지키는 것은 떠나간 이가 생전에 남긴 사람들이다. 시작과 끝. 그리고 또다른 시작.
몇년 전 생일 즈음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이렇게나 삶과 죽음의 사유는 올해도 비슷한 시기에 도래하여 계속 교차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썩 진일보한 생각은 없는 듯하다. 여전히 나는 삶의 행복과 고통을 충직하게 누리며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사는거다 싶다. 점점 멀어져가는 태어난 날을 축하받으며, 한발한발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