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문제는 돈이 된다

by Damon

중간고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오후였다. 학생들이 많이 틀렸던 문제를 해설해 주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어수선했다.

“이놈들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그렇게 강조했는데, 이 문제는 틀리면 안 되는 것 아니니? 아니, 그런데 왜 이리 시끄러워?”

내가 말했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우리 학교 이번 영어 내신 문제가 지금 ○○학원에서 인기가 많아요. 애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인데, 학원 영어 쌤이 기출문제 분석을 엄청 잘해줘요. 특히 18번 문제는 어휘가 너무 어렵게 나와서 이게 이번 시험 킬러 문항이라고 했어요. 맞아요?”

공부를 좀 한다는 한 녀석이 물었다.

“18번이 좀 어렵긴 했지. 하지만 어휘들 다 수행평가 때 나눠준 어휘 목록에 있던 거잖아. 그것들만 열심히 공부했어도 맞출 수 있는 문제였단다. 그나저나 시험지는 누가 학원에 갖다 준거야. 선생님이 밤 꼴딱 새서 만든 창작물인데 학원에서 분석한답시고 문제 그대로 복사해서 사용하면 그거 저작권 침해야. 나는 학원에서 연락받은 적도 없고 저작권료도 못 받았는데(사실 공무상 작성된 자료이므로 학교가 저작권을 가진다), 내가 마음먹고 신고하면 학원 문 닫아야 해.”

“선생님 신고하지 말아 주세요. 그 영어 쌤 좋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 동네에서 그 학원이 그나마 잘 가르쳐요.”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었다. 내 문제를 분석한 블로그 글과 유튜브 영상도 존재한다고 말해주었다.

유명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에 내 문제가 올라가 있다는 소식에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무실에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니 어렵지 않게 블로그 형식의 글과 강의 영상을 찾을 수 있었다. ‘○○고 2학년 중간고사 킬러 문항 분석’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글에는 내가 출제한 시험문제가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가 되어 있었다. 난이도가 높은 문제들은 해설 또한 매우 꼼꼼하게 되어 있었다. 시험지 하단에는 ‘이 시험문제의 저작권은 ○○고등학교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전재와 복제는 금지되며, 이를 어길 시 저작권법에 의거 처벌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진한 글씨로 무색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18번 문제가 이렇게 고평가 되다니, 놀랍네. 출제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했지만, 지문 분석을 상당히 상세하게 하셨군. 시험 끝나자마자 바로 분석 글을 올리셨구나. 밤늦게까지 고생하셨겠다.’

사교육에 몸담고 계시지만 같은 교육자로서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불철주야 자료를 준비하시고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시는 모습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저작권을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양가감정이었다.

학원가에서 학교 시험문제를 (주로 학생을 통해) 확보해 기출문제 분석 강의를 하는 것은 현재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관행 중 하나이다. 기출문제 분석을 잘하고 더 나아가 그 학교 선생님의 출제 경향을 파악하여 다음 시험 예상 문제까지 제공하는 학원은, 내신 위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지방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출제한 시험문제가 우리 학교 주변 학원가에서는 돈줄이 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영어 시험문제는 교과서 이외에도 전국연합학력평가, 해외 사설, 뉴스 등을 활용해 만든다. 학교는 비영리 목적의 교육기관이므로, 교육 목적으로 필요한 경우 원저작물을 활용하는 것은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다. 공교육에서 시험문제는 원저작물에 대한 2차적 저작물이고 공공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학원에서 상업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저작권 문제가 발생한다. 학원은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이다. 아무리 기존 지문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일부만 수정하여 만든 문제라고 하더라도 내가 출제한 시험문제는 2차적 저작권을 가지게 된다.

학원이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저작물을 그대로 가져다 상업적 용도로 활용한다면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크다. 우선, 문제집처럼 만들어 배포했다면 복제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유튜브에 내 시험문제를 그대로 활용한 강의를 업로드했다면 공개 플랫폼에 허락 없이 저작물을 게시한 경우이므로 공중송신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 또한 학원이나 개인 유튜브 채널에 내 저작물을 통한 수익이 발생한 경우에는 공정 이용이 아닌 영리 목적 사용이므로 명백한 저작권 침해가 된다.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에 나는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았다. 내가 밤잠 설쳐가며 고민해서 만든 문제들이 무단으로 퍼져 누군가에게는 수익의 발판이 되었다. 내가 낸 문제가 ‘돈’이 된 셈이었다. 법으로 따지자면 즉시 학원에 전화해 경고해야 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같은 교육자의 입장에서, 시험이 끝나자마자 문제를 분석하고 해설 강의를 만드는 데 들인 그 선생님의 시간과 정성이 타성에 젖어 있는 나의 교육적 노력을 되돌아보게 했기에, 나에게는 이번 사건이 큰 수업이었다. 또한 내가 만든 문제가 누군가의 교육 자료로 활용될 만큼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 또한 위안이 되었다.

다만, 그 가치가 온전히 존중받으려면 교육자들 간에도 저작권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태도가 필요하다. 서로의 노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말이다.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은 저작권자에게 간단한 연락만으로도, 이 경우에는 학교에 허락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부분이다.

학교 안팎에서 교육자들은 확고한 소명의식과 교육철학으로 무장하고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진정한 ‘배움’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두의 애씀이, 건전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인정받고, 서로에 대한 예의가 지켜지고 상호 존중받는 ‘교육’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