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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an 17. 2021

나의 ‘본캐’는 그냥 ‘나’입니다

부캐의 시대

아이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인내의 시간이다. 밥상을 차리기 전까지 “심심하니까 놀아달라”고 투정을 부려놓고선 숟가락만 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단다. 전날 블록으로 만들었던 집이 비뚤어졌으니 바로잡아야겠단다. 조금 전에 물을 마셔놓고 목이 말라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며 엉덩이를 들썩인다. 한 번만 보여달라고 사정할 때는 들은 체도 하지 않더니, 갑자기 자기 이름을 써보겠다고 종이와 색연필을 찾는다. 이런 청개구리 심보라니.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가능한 한 감정은 배제하고, 바른 식사 습관을 알려주려고 노력하지만, 늘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가족이 함께 밥 먹는 시간만큼은 ‘하하 호호’ 웃으면서 즐기고 싶은 마음은 욕심인가 싶을 때가 많다. 아이를 신경 쓰느라 체한 적도 있어서 ‘먹기 싫으면 먹지 마!’라는 말이 울컥 올라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어린이집에서는 열 명 이상 아이들이 한꺼번에 식사해야 하는데, 집에서처럼 딴짓하다가는 제 밥그릇 사수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은 결국 잔소리로 튀어나오고야 만다.

 


어렵게 식탁 앞에 앉아도 문제다. 어린 참새처럼 입만 쩍 벌리고는 싱긋 웃는다. 엄마가 먹여달라는 이야기다. 못 이긴 척, 몇 숟가락을 들이밀다 보면 한숨이 나온다. 아이를 먹이느라 식은 밥을 보면, 입맛이 떨어질 때도 있다. 이렇게까지 먹여야 하나, 싶지만, 밥상을 물리고 나면 아이가 남긴 밥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달콩이 형아 된 줄 알았는데, 다시 아가로 돌아가야겠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엄마한테 자꾸 먹여달라고 하고 말이야.”

“나는 형이지만, 엄마한테는 아가잖아요.”



 아이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몇 달 전, 어린이집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이 식사 예절이었다. 제자리에 앉아 스스로 제 몫을 끝까지 다 먹는지를 물었다. 집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모범생’이라고. 바른 자세로 밥 한 톨, 김치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맛있게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이런 아이의 모습에 친구들이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밥을 먹는 ‘자극 효과(?)’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아이는 때와 장소에 따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바꾸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린이집에서는 동생과 친구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다섯 살 형의 페르소나를,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 있을 땐 어리광부리는 아기의 페르소나를 보여줬다.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였다.

 





소나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지칭한다. 우리가 페르소나에 주목한 건 현대사회의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개인화한 요즘 사회에서는 과거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기에는 결핍 비슷한 것을 느끼는 듯하다. 직장에서의 정체성과 퇴근 후의 정체성이 다르고, 일상과 SNS할 때 정체성이 다른 것은 이제 ‘앞, 뒤가 다른 사람’이라고 손가락질당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기 상황에 맞는 여러 개의 가면(정체성)을 필요에 따라 바꿔 쓰는 것은 이미 트렌드가 됐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이를 ‘멀티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지난해 방송가를 휩쓴 ‘부캐’ 열풍은 ‘멀티 페르소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부캐는 부캐릭터를 줄인 말로,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하던 용어다.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본캐릭터) 외에 새롭게 캐릭터를 만들어 목적에 맞게 활용한다는 의미로 부캐라고 이름 붙였다. 부캐라는 단어가 일상에서 쓰이기 시작한 건 한 예능 프로그램이 큰 역할을 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반듯한 이미지의 방송인 유재석 씨가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라는 부캐로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반짝이 재킷을 입고 트로트 장르의 전매특허인 꺾기 신공을 선보이면서 트로트 가수로서 입지를 구축했다.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의 이름을 딴 천재 드러머 ‘유고스타’, 하프 연주자 ‘유르페우스’, 이효리, 비와 함께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 멤버 ‘유두래곤’, 가수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로 구성된 그룹 환불원정대의 제작자 ‘지미유’까지. 방송인 유재석 씨가 보여준 부캐의 세계는 무궁무진했고, 대중들은 열광했다. 여러 부캐에 애정을 갖고 팬심을 숨기지 않는가 하면,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부캐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했다. 방송인 유재석의 모습뿐 아니라, 그의 부캐 또한 능력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부캐의 시대’다.

 





부캐를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참 반갑다. 일하는 엄마가 경험하는 역할의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밑바탕이 돼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기자라는 정체성 안에서 살았다. 내가 가진 직업 자체가 나를 대신하는 이름이었다. 직업이 나의 본캐라고 믿었다. 복직 후, 마음이 참 급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엄마’라는 정체성 안에서 살았지만, 직장인의 정체성으로 빨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평소보다 더 바지런히 움직였다.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일 년을 덜 했으니, 감을 잃었을 테고 하루빨리 전처럼 일해내야 부서원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퇴근하는 순간까지, 아니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조차도 회사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이와 관련한 이슈로 휴가를 내는 것도 눈치를 봤다. 애 키우느라 일을 소홀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전염성 있는 질환이 아니고서야 약을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당연했다. 우리 부부는 육아독립군이었으니까.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날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 주체하기 어려웠다. 나는 일하고 싶었고, 또 아이를 위해서 일을 계속하고 싶었다. 아이를 생각하면서 버티던 날이 수개월 이어졌다.



꽤 오래 침체한 일상을 보낸 후에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와 동일시 했던 직장인, 기자라는 정체성, 엄마의 정체성과 거리를 뒀다. 일과 육아에 가려있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직장인, 엄마라는 정체성은 내가 써야 할 많은 가면 중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섯 살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면서 ‘나’를 지켜내야 했다.

 


회사에서는 직장인의 가면을 썼다. 근무시간에는 어린이집에 가 있는 아이 생각, 널브러진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접어뒀다. 내 몸이 회사에 있는 동안은 어떤 것도 달라질 게 없었으니까. 월요일, 편집회의가 끝나면 마감날인 목요일까지 해야 할 일을 확인했다. 마감날,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시간을 쪼갰다. 오전과 오후에 할 일을 나누고,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지워가면서 매일 해야 할 일을 퇴근 전까지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사람이 하는 일에 늘 변수는 있기 마련이기에 그 시간까지 감안해 매일을 살았다. 업무 시간에는 치열하게, 퇴근 시간은 칼처럼 지켰다. 하루 중 12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종일 일에 치이다 집에 가면 손도 까딱하고 싶지 않을 때가 많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퇴근 후 십 분은 아이를 안아주고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를 알려주는 데 집중했다. 오늘 하루, 별 일없이 씩씩하게 보내고 내 품에 안긴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알려줬다.

 


직장인으로서의 가면, 엄마의 가면을 바꿔 쓰는 것에 조금 익숙해지자, 나의 일상에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자책하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여유가 생겼다. 물론 아이가 자라면서 한결 수월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렇게 여유가 생기자,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날 가슴 뛰게 했지?’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려면 뭘 해야 할까?’

 


글을 쓰는 게 좋았다. 무뚝뚝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빠가 해준 칭찬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우리 딸 최고!” 몰랐던 나의 잠재력을 일깨운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에 지금까지 기자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워킹맘으로 살던 어느 날, 경제활동을 넘어서는 진짜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작가라는 또 다른 가면을 써야 한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SNS도 하지 않던 내가 지극하게 사적인 영역까지 드러내야 하는, 쓰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고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작가의 가면을 쓰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부캐의 전성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워킹맘을 ‘회사 다니는 엄마’로 정의할 수 없는 시대다. 하나의 가면으로 살 수 없는 시대라면, ‘나’의 본캐를 유지하면서 직장인, 엄마, 작가의 부캐를 즐겨볼 생각이다.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 각각의 캐릭터가 적재적소에서 발현하길 원한다면, 먼저 나를 제대로 알고 들여다봐야 한다. 내면 깊숙이 잠자고 있던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부캐가 본캐를 잡아먹지 않도록, 본캐가 부캐에 끌려다니지 않도록 자아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다. 본캐와 부캐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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