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앓이를 거부한다

우아한 흔적을 남기고 싶다

by 김명교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중년’은 까마득하게 멀다고만 여겼다. 시행착오만 가득했던 20대가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 버리길 바랐다. 미숙했던 20대의 나는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 말씀을 믿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잘 다듬어진 어른이 될 수 있길 기대했다. 하루빨리 나이를 먹고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는 연륜을 뿜어내고 싶었다. 말 한마디에 신뢰가 묻어나고,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30대 초, 결혼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마흔이 성큼 내 앞에 와있었다.



서른 후반이 되자, 확실히 예전 같지 않다.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다 보면 흰머리가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민다. 갈수록 칙칙해지는 안색 하며,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처지는 피부가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준다. 아이와 노는 것도 체력이 달린다. 고작 30분 정도 놀았을 뿐인데, 급격하게 피로함을 느낀다. 언제쯤 자러 들어가려나, 시계만 쳐다본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벌써 내 몸은 마흔을 맞이할 준비를 하나 보다.



종종 스무 살 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온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아니’라고 말한다. 앳되지만, 어설프고 열정 가득했지만, 도전과 좌절을 반복하느라 아팠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사진 속 내 모습을 들여다봐도 다르지 않다. 생기 도는 피부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 때 묻지 않은 그때의 나는 내가 봐도 예쁘다. 젊음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그래도 돌아가기 싫은 건 차분하게, 나답게 나이 들어가는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노화나 늙는다는 말로 평가절하하기에는 그동안 묵묵하게 걸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으니까. 한 아이의 엄마로, 밥 값하는 직장인으로,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서른 후반의 나도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나의 30대. 일도 육아도 잘 해내려다가 위기를 마주했다. 바닥을 치고 나니,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꽤 오래 노력한 후에야 번아웃과 우울증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야 조금 살만해졌는데, 다시 변화가 찾아온단다. 중년의 위기, 마흔앓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흔이 뭐 별건가. 사람이 나이 드는 건 지극하게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데. 왜 그리들 호들갑을 떠는 걸까. 진짜 뭐가 있긴 한 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마흔’을 주제로 한 책이 서점가에 쏟아지고,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걸 보면 괜히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사춘기를 지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상처받았고, 결혼과 출산으로 흔들렸다. 그런데 또 한 번 내 인생이 출렁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마흔앓이를 격렬하게 막아서고 싶어졌다.


프랑스의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크리스토프 포레 박사는 <마흔앓이>에서 말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성장 과정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중년의 나이가 되기까지 외부 세계에 맞춰 삽니다. 가족과 사회 규범, 조직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고 그 대가로 사랑과 안전을 보장받고 ‘나는 누구’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죠. 하지만 나이가 들어 타인의 시선에 집착할 이유도, 외부 세계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갈망도 줄어들면 그동안 외면하고 억눌렸던 자기의 또 다른 면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거죠.”


우아하게 마흔을 맞이하고 싶다. 어차피 겪어야 하는 거라면, 비포장길보다는 잘 닦인 아스팔트 길로 우회해 걷고 싶다. 세월에 등 떠밀려 넘어지고 싶지 않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는 말이 있다. 외모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의미다. 우리는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산다. 지나간 시간과 감정, 생각과 가치관은 흔적을 남긴다. 이왕이면 우아한 흔적이 내 얼굴에 남았으면 좋겠다.


너의 최고의 인생이 시작됐어. 점점 더 좋아질 거야. 앞으로 황금의 시기가 오고 있어. 정말 아름다운 시기가 바로 40대라고.
<배우 문숙의 인터뷰 중에서>


*커버 이미지 - 유튜브 얼루어 코리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