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임을 마음 놓고 즐기던 때가 있었다.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연말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보내야 할 것 같아서, 비어있는 날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솔직하게 말하면, 그만큼 마음이 미치지 않아서) 안부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지인들과 얼굴 보면서 올해를 마무리하자고 만남을 청했다.
그렇게 북적북적 연말을 보내야 그동안의 무심함을 속죄할 수 있는 것 마냥. 만남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다이어리를 보고 있자면 내심, 만날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데 흐뭇해지기까지 했다. 그래, 아직 안 죽었어!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시느라 속이 너덜너덜해져도 이게 연말의 맛이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과 다르지 않은 ‘연말 의식’을 다 치르고 나면 방전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충전이 필수였고 정작 새 마음, 새 뜻을 품고 상쾌한 기분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때 침대와 한 몸이 된 채였다.
그렇게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허무함이 밀려왔다. 시끌시끌 떠들던, 앞에 놓인 잔이 빌세라 채우기 바빴던,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느라 이리저리 살피느라 분잡했던, 그날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짧은 근황 이야기가 오가고 나면, (나를 포함해) 서로 자기 할 말만 하느라 무슨 대화를 했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 의미 없는 만남이었다는 사실에 멍해지곤 했다.
타의로 연말 의식을 치르지 못하게 된 지 2년째. 올해도 잔잔하기만 하다. 산타 할아버지를 대신해 전할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기고, 가족과 나눌 조금 특별한 저녁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한 해 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 한 나를 칭찬하고, 늘 한결같이 곁에 있어 준 든든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뿐이다. 차분한 연말이 아쉬울 만도 한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하다. 어쩌다 모임에 나가지 못해 경험하는 소외감에 몸서리치거나 어떻게든 약속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이를 두고 ‘관계의 거리두기’라고 이름 붙였다.
의식적으로 유지했던 사이는 끝에 다다랐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편치 않았던 사이도 다르지 않았다. 유지하는 데 급급하던 사이도, 나를 아프게 하는 만남도, 고민과 상처만 남긴 시간도 저 멀리 떠나보냈다. 한동안은 텅 비어버린 그곳을 바라보기만 해도 참, 헛살았다, 싶더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복잡한 관계 속에 묻혀 웅크리고 있던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로 존재하면서 온전하게 존재하는 타인과 맺은 관계는 밀도 있고 깊었다. 풍요 속 빈곤이라고 했던가. 여럿이 모인 무리 속 ‘우리’였을 때는 나누지 못했던 정서적 교감, 소통, 그 이상을 드러내놓고 나니, 그제야 진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염병조차 어쩌지 못하는 이끌림,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안녕하길 바라는, 인간적인 끌림을 느꼈다.
복잡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외로웠던 그때보다 단순하지만, 밀도 있는 사이로 발전한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고요하다. 조바심이나 소외감, 어딘가에 속하고자 하는 욕심 같은 감정에서 자유롭다. 존중과 이해, 배려 같은 것들을 재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성숙한 관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나를 둘러싼 관계가 이제야 안정을 찾았다고 하면, 서운해할 사람이 있으려나. 아마도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