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운세를 보는 마음

by 김명교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고학년이 되면서 체력 강화니, 담력 훈련이니, 공동체 의식 함양이니, 이런 거창한 교육 목표를 이루기 위해 1박 2일이나 2박 3일 일정으로 단체 수련회를 떠났다. 교육적 필요에 따라 기획된 학교 행사였지만, 우리에게는 그냥 놀러 가는 날이었다. 수련회를 떠나는 날까지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친한 친구들과 꼬박 며칠을 붙어있을 수 있어서, 학교에서 벗어나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무엇보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으려고 머리를 굴리지 않고도 공식적으로 외박을 할 수 있다는 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옷을 입을까? 장기자랑은 뭘 준비해야 하지? 준비물은? 선생님이 수련회 동의서를 나눠주던 그 날, 나는 벌써 수련장에 가 있었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나와 달리, 엄마의 얼굴은 어두웠다. 학교 선생님이 동행하긴 해도 사건, 사고라는 건 늘 그렇듯,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아마 내가 너무 들떠있어서 더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수련회 준비하느라 방방 뛰어다니는 내게 엄마는 조심 3종 세트를 당부했다. 차 조심, 물 조심, 안전사고 조심.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올해 특히 물 조심하라고 하니까, 물놀이할 때 조심, 또 조심해!”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서 입을 삐죽거렸다. ‘또 신년 운세를 봤나 봐. 미신을 왜 믿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뭐만 하면 조심해라, 안 된다…. 칫, 난 안 믿어.’ 그러면서도 막상 수련회에 가서는 주위를 살폈다.


25년이 흐른 지금, 이따금 포털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운세를 본다. 자기 전,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나 사람 사이의 문제가 어렵게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운세를 검색한다. ‘내일은 더 신중하게 말해야겠구나’,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다고? 힘을 빼야겠군’, ‘일을 실수 없이 하도록 신경 써야겠다’. 신년 운세를 보고 조심해야 할 것들을 당부하던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았던 내가 맞나, 싶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 엄마의 마음과 지금 나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20대의 나는 천방지축이었다. 앞뒤 따지지 않고 생각과 감정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게 맞는다고 생각했으니까. 상처받고 아프더라도 할 말은 하고 해야 할 건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남는 게 없었다. 달라지는 게 없었다. 상황은 더욱 악화했고, 관계는 경직되기만 했다.



그래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지, 속마음을 드러내 보였을 때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나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해야 하는 일인지 고민했다. 질문에 질문을 더하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쳤던 감정은 잔잔해졌고, 생각은 명료해졌다. 실수하는 빈도도 조금씩 줄었다.


오늘의 운세는 숨을 고를 때 유용하다. 운명이 결정됐다고 보고 맹신하는 것과는 다르다. 좋은 기운이 강할 때는 그 기운이 내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도록 평소보다 더 힘을 내고, 나쁜 기운이 감지될 때는 신중해진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나의 일상에 스며들지 않도록 막아 낸다. 무방비 상태로 그 모든 것들을 상대하기보다 앞뒤, 좌우, 아래위를 살피면서 몸과 마음이 준비할 시간을 주는 거다. 살짝 거창하게 말하자면,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기 위한 ‘수신(修身)’의 과정이랄까.


그래도 이왕이면, 욕심을 살짝 부려보자면, 내일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좋은 기운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니다. 좋은들 나쁜들 어떠리. 하기 나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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