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알림 기능이 내게 준 기쁨
사람이 그리운 시대
생일이 또 돌아왔다. 때 되면 알아서 도착하는 각종 공과금 고지서처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안다. 굳이 숫자 1을 더하지 않아도 내 몸은 딱 그만큼의 세월을 지낸 티가 난다. 단 하루 차이로 숫자가 달라지는 게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생일날과 생일이 아닌 날은 그냥 다 같은 날인데 말이다. 생일 전날 아침, 생일날 아침은 똑같은 아침일 뿐이다. 그런데 생일을 기점으로 ‘35세의 나’는 ‘36세의 나’가 된다.(만 나이로) 생일날에는 그 경계를 넘어가는 나를 가만히 위로한다. 나이답게 나이 들어야 한다는 ‘나이 듦의 무게’가 더해지는 날이라서.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었다. 늘 그렇듯, 회사로 출근해 모바일 메신저를 켰다. 메신저 첫 화면에서 폭죽이 터졌다. 생일을 축하한단다.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해 덩실덩실 춤도 춘다. 민망해라. 아니, 참 친절하기도 하지. (한 살 더 먹었다고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복잡한 출근길을 헤치고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남편에게 전했다.
온종일 넘치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어떻게 알았을까. 가족 생일도 깜빡하는 나로선,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놀랄 수밖에. 곰곰이 생각했더니 범인(?)은 메신저다. 나를 친구로 등록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생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축하 메시지를 받고, 안부를 묻다가 여러 감정이 솟아올랐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축하 메시지를 보낸 마음에 고마웠고, 마흔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이처럼 생일 축하를 받는 상황이 부끄러웠고, 바쁠 텐데 괜히 번거롭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혹여나 알림을 불편해했던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자꾸 나이 드는 것만으로도 마뜩잖은데, 주변에 부담을 주는 건 더더욱 못마땅했다. 인터넷 검색 몇 번 만에 알림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설정을 바꾸려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진동이 울렸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선배였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이 뜸해진 지 오래라서, 닿지 못한 시간이 길어져서, 무심했던 게 미안해서 안부 메시지를 입력하다가 지운 게 여러 번이었다. 짧은 시간, 축하 인사와 안부 인사를 나누던 우리는 꿈을 논했던 20대로 돌아갔다. 불안했지만, 즐겁고 열정 넘치던 그때를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았다. 곱게 품고 있던 좋은 기억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땐, 벅차도록 기뻤다. 고마웠다. 어느 때보다 사람이 그리운 요즘, 내가 알던 고마움의 감정을 넘어선 뭔가가 목구멍에 걸렸다.
누군가와 닿은 인연이 끊어지지 않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는 게 관계라서. 언제 끊어졌는지 알 수 없게 끊어지고, 어떻게 이어진 건지 모른 채 이어지기도 해서. 한 가지 분명한 건,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 누구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생일 알림이 끊어질 뻔한 인연의 끈을 다시 잇는 매개가 될 줄이야. 핑계라고 해도 좋고, 겸사라고 해도 좋고, 사실 뭐가 돼도 좋았다.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지만, 거리두기가 필수라서 마음이 가닿기조차 쉽지 않으니까.
생일 알림을 끌까, 말까. 마음이 이리 기울다가 저리 치우쳤다. 나이 먹은 걸 축하받는 건 여전히 민망하지만, 인연의 소중함과 관계 이어가기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생일 알림의 과한 친절함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처지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다. 생일 알림 설정을 ‘ON’ 상태로 두기로 했다. 누군가가 나를 한 번 더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면서. 그리고 생일을 맞은 후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