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정의의 지표
이번 글쓰기 (모임) 주제는 '올해 여름에 대해 기억나는 에피소드, 경험, 관계' 중에서는 나는 '관계'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여름에 인상 깊다기보다는 나 스스로 올해 새로 정의한 관계들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보통의 사람들 친구, 동료, 가족, 연인, 지인 등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나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스스로 가까운 사람 범주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꾸밈없이 나의 많은 것을 오픈하고, 신경 쓰고, 챙겨주려고 하는데 반해 그 그 선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꽤나 벽을 치고,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으니 차갑다고 상대방이 느낄 것 같다.) 그래서 그 선 안에 사람들에게는 수용적으로, 내가 힘들고 여유가 없더라도, 시간이나 에너지를 꽤나 할애하고 크게 코멘트를 달지 않고, 그 선 밖에 사람들에게는 수용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모두에게 상당히 '수용적인' 사람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처음에 그 말을 듣고 '읭'스러웠다. 내가 보는 선 밖에 사람들은 '행인 1,2..'에 그칠 뿐이고 그들을 대할 때 내가 살갑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츤데레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되게 차가울 것 같은데 의외로 안 그렇고, 챙기는 것도 늘 많은 사람 같다는 말을 들었다. 회사에서 가령 나에게 왜 미리 정하지 않았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도 같이 일 했는데 왜 너는 그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냐는 반응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즉각 상대방 말을 인정했고, '아 예'라고 답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보고 그럴 필요가 없다. 너만 유난히 잘못한 게 아닌데 왜 받아주냐는 말을 들었다. 최근 동호회 활동으로 동호회 회원이 아닌 사람과 함께 공간을 쓰면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냐, 양해를 구할 수 있냐는 등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각자 느낀 바를 반복적으로 말하는 상황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문제의 소지는 이해했으니까 알겠다. 필요하면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내가 해결해 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말 오가는 게 싫어서 빠르게 내가 할 수 있다면 빨리 해결해 버리겠다는 태도였던 것인데, 이 또한 생각보다 받아준다는 말을 들었다.
모두에게는 수용적이지만, 나의 일상, 개인적인 고민을 토로하는 편한 사람들과 그 외로 나는 선을 긋고 있었던 걸까 싶었다. 정말로 나 스스로 수용적이라는 말이 좀 놀랍게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다.
올해 예상보다 이런저런 소개팅 제안이 있었다. 어른들을 통해서도 그렇고, 어쩌다가도 그렇고. 완전 타인인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감정 혹은 상황이 떠올라서, 나의 입장이나 의사를 을 표현하기 너무 힘들어 했다. 그래서 나의 에너지와 감정을 소진하면서 지쳤었다. 상대가 거절의사를 먼저 말해주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고, 내가 직접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려워 했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생각보다 나는 관계 안에서는 '수동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다는 걸 상기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친구, 지인 관계들에게 적극적이기도 하지만, 그 외 관계에서는 상당히 '수동적'이랄까. 분명히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달릴 때도 있긴 한데, 모든 영역에서, 모든 관계에서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걸 인지했다.
그리고 타인과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이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나를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신선했다. 물론 덕분에 나를 다시 바라보고, 나의 마음도 좀 더 온전히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지, 신뢰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 내 취향, 스타일을 알아가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예외 상황도 있다 보니 대체 '나'는 어떻게 정의하기 참 어렵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무언가를 결정, 선택, 판단하는 데 있어서 확신이 없어서 주저하는 게 많았는데, 최근 이런저런 상황을 통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 새로 인지한 부분이 타인의 관계를 바라보는데도 좋은 지표, 근거가 되어주었다. 평생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알아야 하고, 얼마나 알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