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D Jul 14. 2021

첫 브런치 북 발행 소감

온종일 글만 썼던 행복하고 절실한 하루



밤 11시


일찍 잠들어준 따님 덕분에 이른 육퇴를 하고 다시 출근을 한다.


나는 투잡 뛰는 엄마다.


출근 준비라고 해봤자 어지러운 식탁 위를 정리하고 깨끗이 한번 닦은 뒤 노트북을 펼치는 것이다.

노란 불빛의 독서등을 켜고 작가 담다D로 변신한다.


밖에서 안이 보일까 쳐두었던 커튼을 걷어본다.

어두워진 단지에 불 켜진 창문이 드문드문 보인다. 저 멀리 길게 줄지어진 소각장 전구가 반짝거린다.

마치 동해바다 앞 게스트하우스 거실의 큰 창문 앞에 앉아 오징어잡이 배 불빛을 전등 삼아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오늘은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십 분도 못되어 끄고 조퇴할 참이었다.

글이 안 써질 것 같아서였다. 평소 보지 않던 TV도 한번 켜보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그렇게 재밌다는데 그걸 한번 봐볼까?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는데 징~징하고 특유의 진동이 울린다. 몇 분 후 또 한 번 울린다. 몇 분 후 또 울린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내 글이 뭐라고 구독까지 해주신 독자분이 연신 라이킷을 눌러준 것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슈퍼파워 같은 게 솟아났다.

TV를 끄고 다시 식탁 앞에 앉았다.

고마웠다. 뭐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앉아 글만 썼다.


글을 쓰기 위해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아침밥을 했다.

그날은 초복이었다. 미리 주문해둔 삼계탕용 닭 세 마리를 큰 솥에 넣고 푹푹 고았다.

한 마리는 일요일에도 출근하는 남편을 위한 것이었고, 한 마리는 귀요미 J와 S의 것, 한 마리는 쌍둥이 언니와 형부의 것이었다.


그렇게 정성껏 끓인 삼계탕과 딸 J를 쌍둥이 언니네로 보내고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서둘러 글을 쓸 생각이었다. 김치 한 가지를 놓고 면치기를 하다 지금 내 모습이 더 절실해 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식탁 앞에 앉았는데 마치 김이설 작가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시인을 꿈꾸는 소설 속 여자가 매일 밤마다 필사를 했던 바로 그 식탁 앞에 내가 앉아있었다.


밤 12시 되길 몇 분을 남겨두고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이 날은 브런치 북과 윌라 오디오북 출판 프로젝트의 마지막 제출일이었다.


브런치 북이어야 응모가 가능했고 아직은 두서없는 주제의 이야기들을 그저 묶었다.

초고가 없었던 두 개의 글도 새로 써넣었다. 이렇게 첫 브런치 북을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에 뿌듯한 마음도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글이지만 가진 시간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생애 최초 내 집 마련이 아닌 생애최초 브런치 북인 <쌍둥이 자매의 공동육아를 담다>를 마련했고, 이 프로젝트에 마지막으로 응모된 브런치 북이 되었다.






현재 진행형인 공동육아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도전을 하며 온종일 글만을 생각하는 하루를 보냈다.

물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 딸내미 챙기느라 글 한 줄 쓰고 밥 먹이고 글 한 줄 쓰고 씻기고 하긴 했지만 절실한 글쓰기의 하루라는 점에서 또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다른 작가님들의 응모된 브런치 북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정말 다양하다.

정말 대단하다.

정말 재밌다.

정말 공감된다.


난 정말 안 되겠다.



엉덩이에 글쓰기 근육이 붙지도 않은 초보로서, 한 주를 시작하며 글 쓸 힘이 조금은 빠져있었다.


그것은 내 부족한 글 때문이 아닌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J는 어린이집 긴급 휴원에 들어갔고, 온종일 육아와 집안일과의 전투 끝에 기록할 힘이 1도 남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주제는 웃프게도 공동육아이다. 저녁 6시 이후 3인 이상은 못 모인다. 이 현실에서 나는 <코로나 시대의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기록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공동육아를 하고 있었지만 더 안성맞춤으로다가 해보려고 한다.


덮었던 노트북을 다시 열게 해 준 이 밤의 독자님을 위해서 열심히 잘 쓰고 싶다.


이제 퇴근할 시간이다. 무보수로 연장근무를 해버렸다. 어느새 드문드문 켜져 있던 불빛은 온데간데없고 어두운 창 밖 멀리로 오징어배 불빛만 아른거린다.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리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언제 집까지 가지?

딸 J의 마법봉을 잠시 빌려 순간 이동해야겠다. 휘리릭~





https://brunch.co.kr/brunchbook/coparenting1



매거진의 이전글 너도 네 위주로 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