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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Sep 16. 2023

≪태양은 다시 뜬다≫(헤밍웨이)를 읽고

독서 기록

헤밍웨이가 27세 때 쓴 작품이다.

젊은 헤밍웨이가 느껴진다.


술, 낚시, 여행, 투우


주인공 젊은이들이 모두 삶의 목표 없이 멍하니 있는 느낌이다. 정처 없이 먹고 마시며 시간을 때우는 느낌. 술 먹고 밥 먹고, 또 술 먹고 밥 먹고, 그러다 사람들 만나서 또 술 먹고, 밥 먹고....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정처 없이 떠도는 젊은이들의 무료함, 권태로움, 멍함이 느껴진다.


읽으며,

"아니, 얘들은 어디서 돈이 이렇게 나나? 맨날 먹고 마시고 여행 가고, 놀고... 그냥 그렇게 사네. 삶이 참 권태롭고 재미없겠다... 술 먹고 여행 다녀도 삶이 참 허무해 보이네."

싶었다.  


헤밍웨이가 그리고 싶었던 모습이 그것이었을까? 1926년에 출간된 작품인데 큰 호평을 받는다. 우리 모두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란 말을 참 많이 들어 봤지 않나? 바로 이 작품으로 유명해진 말이란다.


잃어버린 세대, 길 잃은 세대. 1차 세계대전 이후 방황하던 세대들을 지칭하는 말로, 이 작품 속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놀고먹고 땡! 하지만, 재미있어 보이지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방향성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그 느낌. 삶의 권태와 허무, 똑같음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다.


이 작품 속 젊은이들은 오늘날 방향성 상실한 모든 사람의 대변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이 꼭 전쟁 후가 아니더라도 정신의 방황, 마음의 방황을 겪는 사람들에겐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마치 자신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다.


전쟁에 참전했다 부상을 당한 제이크. 그가 바로 이 작품의 서술자이다. 정확하게 성불구라고 팩트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이크의 친구가 성불구와 관련하여 제이크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고 자신의 그 말로 제이크가 마음 상해할까 봐 눈치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제이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며 '하고많은 부상 중에서도 하필'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고, 거세소 얘기도 의미심장하게 나온다. 성불구와 관련해 브렛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나오고. 이렇게  전반에서 성불구와 관련한 반복이 계속 있다. 이 자체가 암시일 것이다.


고로 통해 짐작해 보면, 제이크는 겉으로는 사지 멀쩡해 보이나 어찌 됐든 성과 관련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사람이 맞는 것 같다.


이 제이크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데, 가까이에 있지만 언제나 이 여인을 자신 곁에 두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여인은 자신이 아쉬울 때, 힘들 때 꼭 제이크에게 와서 쉬고 간다. 위로를 받고 챙김을 받고 그리고 자기 길을 간다. 브렛이라는 이 여인이 참 특이했다.


브렛은 이 작품의 홍일점이다. 작품 전체에서 구심점을 이루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이 여자를 중심으로 여러 남자가 나온다. 브렛 마음대로 이 남자, 저 남자, 또 저저 남자... 계속 바꿔 간다.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말이다. 신기한 건, 모든 남자가 그 브렛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 주인공 제이크도 그중 하나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못된 여자'캐릭터이다. 사람 마음을 힘들게 하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배려도 없이 가지고 노는 느낌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선 브렛이 일부러 사람을 가볍게 가지고 노는 느낌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브렛은 그 순간 항상 진지하다. 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인심을 잃지도 않는다.


어느 한 사람에게도 정착할 수 없는 브렛. 이 여인도 로스트 제너레이션 중 한 사람인 것이다. 그 누구와도 사랑 진지하게, 깊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브렛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힘들까... 하지만, 브렛도 어쩔 수가 없다. 자신의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에 그런다.


오늘날 이런 여인이 곁에 있다면, 남자들 아마 다 열받을 거다. 이 여인 주변에 같이 다니는 남자들이 거의 다 서로 친구이다. 이 여인은 그 친구들을 번갈아 가며 사귀고 그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데.... 이 설정이 소설 속에서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지는 구조로 그려진다.


헤밍웨이가 이런 이상한 상태의 여인을 작품 속에 그린 이유가 뭘까?

헤밍웨이 본인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7살 연상의 간호사를 만나 사랑했었다고 한다. 본국으로 귀국 후 그 여인에게 이별의 편지를 받고 힘들어했다던데, 그 여인의 이미지를 '브렛'에게 불어넣은 것일까?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지만 종잡을 수 없는 여인?


브렛도 전쟁 중 간호사로 일했었다. 부상당한 제이크를 간호해 주며 제이크가 브렛을 사랑하게 된 걸로 소설 스토리는 그려진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브렛은 헤밍웨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만든 인물 같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과 소년이 느껴진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젊은이가 느껴진다. 등장인물의 연령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작품의 분위기 자체도 그렇다. 노인이 하는 일과 젊은이가 하는 일이 달라서 그럴 거다. 작품 간 늙고 젊음의 차이는 있으나, 두 작품 모두 어떤 '정신'을 기리고 있다는 점에선 같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과 큰 물고기(청새치)와의 사투

                                     &

≪태양은 다시 뜬다≫에서, 투우사 로메로와 황소와의 사투


두 작품 모두에서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 헤밍웨이가 그 정신을 높이 사고 있음을 읽으며 알 수 있다. 그 대상과 인간의 팽팽한 긴장감. 진정한 정신의 싸움. 그 고결함. 헤밍웨이는 이걸 높이 칭송하는 느낌이다.


난, 헤밍웨이 작품의 간결함이 참 좋다. 더 이상의 긴 설명이 없어서 좋고, 작가가 이렇다 저렇다 다 설명해 주지 않아서 좋다. 내 생각을 방해받지 않아서 좋고, 그 문장의 간결함이 오히려 강한 울림을 주어 좋다.

결론, 다 좋다.


내가 읽은 헤밍웨이의 작품은 다 좋았다. ≪킬리만자로의 눈≫도 참 좋았는데... 그래도 현재까지 가장 좋았던 작품은 ≪노인과 바다≫이다.


단지, 헤밍웨이 본인이 자살을 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좋은 작품들을 쓰고, 이 멋진 정신을 펼쳐 놓고.... 헤밍웨이는 왜 그런 식으로 갔을까... 안타깝다.


극단적인 것을 좋아하는 성향인 것은 그만큼 마음이 헛헛하다는 증거일까? 마음이 허해서 자꾸 자극적인 것을 원한 것일까? 그러다 결국, 자극의 끝점으로 생을 마감한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혼자 해본다.


잃어버린 세대의 갈 길 없음을 그렸지만 헤밍웨이, 희망을 갖고는 싶었던가 보다. 제목이

≪태양은 다시 뜬다(The Sun Also Rises)≫인 것을 보면 말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 지금 힘들어도 태양은 다시 뜨게 되어 있다.

이 세상, 힘든 모든 사람들에게 헤밍웨이가 던지는 말.


태양은 다시 뜬다.



추가 기록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라는 제목은

'태양이 또 뜬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제목의 의미는 희망의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의 의미일 수 있다.


오늘 이 하루, 이 태양을 겨우 보냈는데...  내일 일어나면 또 똑같은 태양이 뜬다. 무섭도록 지겹게, 벗어날 수 없게... 무한반복.


이렇게 해석한다면 이 작품 속 인물들이 전체적으로 보여주었던 허무, 지겨움과도 잘 통한다.


문학 작품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니, 감상하는 묘미가 있어 좋다.


같은 제목, 전혀 다른 해석.


헤밍웨이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그가 단정짓고 강하게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않아서 역시 좋다.


제목에 대해 독자들은 자기 마음껏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여지가 매력적이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희망의 의미일까?

태양이 역시나 또 떠서 미치겠다는 지겨움의 의미일까?


해석은 독자의 자유다.


난 희망의 의미를 선택하겠다. 주인공 제이크, 나머지 인물들 모두 아직 젊은 사람들이므로... 비록 현재는 답답해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의미로 보고 싶다. 젊음이 힘이니까. 그 순간 삶이 권태롭고 힘들지라도 아직 젊으니까 희망을 가져도 돼. 난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2023.10.12.목. 추가 글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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