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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렌시아 Aug 27. 2024

문득, 무언의 가족

글감을 준 일상의 이야기

조용하다. 집에 가족 넷이 다 있는데 조용하다. 남편은 퇴근하고 피로하니 씻고서는 TV를 본다. 자기만의 휴식 시간이라 말을 안 걸고 둔다. 딸은 태권도를 나와 같이 갈 때 조수석에 앉아서는 핸드폰을 계속 한다. 뭔가 굉장히 바빠 보여서 말을 안 하게 된다. 말을 걸어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성의 없는 답변뿐이라 그냥 말을 웬만하면 안 한다. 아들이 왔다. 집에서 가장 말이 없는 고2. 자기 방에서 논다. 거실에 잘 나오지도 않는다. 거실에 나와서는 쿠팡에서 이것, 저것, 요것, 먹을 것 사달라는 얘기가 전부이다. 그리고는 아무 얘기도 안 한다. 학교 얘기도 안 하고 친구 얘기도 안 하고 공부 얘기도 안 하고.

 

문득, 우리 가족이 무언의 가족이네 싶다. 아이들이 조잘조잘댈 때,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적막감이 들지 않았는데... 오늘 문득, 적막하다.

이게 다른 집도 비슷한 일상의 모습일까? 아님 우리 집이 너무 조용한 걸까?

엄마 아빠가 20살, 18살 아이와 사는 집.


예전엔 우리 집도 식탁에 앉아서 서로 두런두런 얘기도 많이 나누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자기 세계에 들어가 있는 가족 구성원을 잔소리 해 가며 끌어 모으는 건 좋은 방법 같지 않다. 별로 그렇고 싶진 않다. 나도 내 생활에 푹 빠져서 내 공간으로 잘 찾아 가니까. 그럴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나를 내버려 두는 게 난 좋다.


지금 우리 식구 모두 그런 걸까? 다 때가 있는 것 맞겠지? 지금 우리 가족은 이럴 때인가 보다. 딸과 아들은 딱 현실 남매라 서로 얘기 안 할 시기이고, 남편은 시어머님 병간호로  매우 피곤한 상태라 평일 퇴근 후, 주말 귀가 후 항상 몸과 정신이 매우 피곤한 상태이고. 그래. 알긴 알겠어. 알긴 알겠는데... 그래도 오늘, 우리 집 참 조용하다.


가족 독서 시간이 그나마 있어서 매일 밤 11시, 거실에 모여서 조용히 책을 읽는다. 그나마 이거라도 같이 한다. 이런 거 없었으면.... 정말 모래알이겠네. 20분간 함께 하는 시간. 그냥 같이 앉아 있다 헤어지는 시간.


한 달에 한 번 밖에 나가서 하는 가족 독서 발표 모임. 이 가족 피크닉이다. 예전, 애들 어렸을 때는 외식하러 어디 나가는 것, 매 주가 그런 일이었고, 아이들은 당연히 우리와 함께 나가는 거였는데.... 이제는 나가는 것도 귀찮아 한다. 시켜 먹으면 편하니까. 애들이 자라니, 가족이 함께 뭔가를 할 일이 없다. 현재 우리집은 가족 독서 발표 모임. 이게 우리 가족이 함께 하는, 유일한 일이다. 그것 없었으면.... 한 집안, 각자 삶이었겠다. 정말.


2024 트렌드 코리아에 '핵개인화' 얘기가 있었다는데, 정말 핵개인화다. 각가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취미.

핸드폰 없던 옛날, TV 앞에 같이 앉아 같은 프로를 보다 채널 싸움을 하던 그 시절이 참 좋은 시절이었네 싶다.


문득, 무언의 가족임을 느낀 이 밤.

적막감을 느끼며 타이핑을 한다.

아빠와 딸은 아직도 거실 소파에 앉아서 독서 중이다. 아들은 자기 방.

난 거실 식탁.

아들이 화장실에 들어 갔나 보다. 멀리서 아들이 샤워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나오면 아들은 또 자기 방에 들어가겠지?


자식의 이 시기를 견디는 일, 이 일도 부모의 몫이겠지?

너무 고요한 밤이다.


문득, 가족 간의 따뜻함, 대화, 웃음.

이런 게 그리운 밤이다.


* 아들이 나에게 와서 소화제 있냐고 묻는다. 꼭 필요한 것 있을 때만 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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