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249쪽부터 나오는 내용인데, 요약한다면, 소설 속 인물이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소설가 자신은 인물이 말하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된단다. 소설 쓰기에 몰입한 상황에서 이런 상태가 되는 거겠지.
그 느낌, 참 매력적이다. 소설 속 인물이 자기의 개성으로 소설가를 끌고 간다는 말, 소설가 본인이 어떻게 하는 게 아니가 인물이 살아서 자기 얘기를 한다는 말. 정말 멋지다. 진정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의 작품 안에서 그 작품이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닌가?
비슷한 얘기를 어느 조각가의 일화에서 본 적이 있지. 멋진 작품은 만든 당신, 어떻게 그렇게 조각해 낼 수 있냐고 누군가 물었더니, 자기는 그 돌덩이 안에 있는 작품을 꺼냈을 뿐이라는 얘기를 했지. 자기가 조각해 낸 게 아니라, 그냥 보인다는 얘기. 돌 안의 작품이. 아주 유명한 조각가였는데, 사실 확인을 하려면 여기저기 또 찾아야 하니, 패스하련다.
또 어느 책에서 읽었지. 한국 문화에 관한 어느 교수님의 책에서, 우리나라 아주 유명한 춤 예술가. 그 사람은 무대에서 자기가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단다. 그냥 그냥 하고 내려오는 건데, 그 순간의 자신은 이성적으로 의식하는 자신이 아니란다. 의도해서, 계획해서 예술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이 얘기.
황농문 교수님이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님도 말씀하신다. 생각 없이 뭔가를 한 것, 시간 간 줄도 모르게 그걸 했을 때, '플로우'경험을 한 것이라고. 물이 흐르듯 편안한 상태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열중한 느낌, 바로 '몰입'말이다.
이 기억의 조각들이 다 하나로 연결된다. 작가가 글을 쓸 때, 의도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펜이 움직이고 작품 속 인물이든 서술자든 작가의 펜을 이끌고 갈 때, 분명 그 작가는 몰입 상태일 것이다.
예전에, 대학생 때 서예를 했었는데, 작품전에 낼 작품을 수도 없이 쓰는 연습을 한다. 그런데, 나중에 내 연습본 중 선생님이 고르시는 출품 작품은 내가 가장 기분 좋게 몰입해서 썼던 작품이었다. 부분 부분 별로로 보이는 부분이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그 작품의 느낌이 가장 좋았기에 뽑으신 거겠지. 그때의 경험, 아, 작품을 할 때 작자의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글을 쓸 때,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 쓴다. 그냥 펜 가는 대로 쓰는데, 그냥 둔다. 성의 없어 보일 수도 있고, 가벼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냥 둔다. 머리보다는 느낌을 원한다.
두보는 시성(詩聖)이고 이태백은 시선(詩仙)이라 불리지. 열심히 노력하고 단련하여 시성이 된 두보도 위대하고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툭 시를 던질 줄 아는 시선 이태백도 위대하다.
난, 시성보다는 시선을 추구할 뿐이다. 생활 속에서 시 한 편, 그냥 툭 던질 수 있는 사람. 그럼 사람이고 싶다.
고로, 편히 쓴다. 잘 쓴 글 말고, 그냥 편히 쓰는 글.
그것만으로도 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