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허하라. 스스로에게.
일기를 자주 쓴다. 메모를 좋아한다. 직장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냥 낙서하듯 메모를 하며 듣고 있다. 이런 나를 옆 사람은 희귀하게 본다.
"뭘 그렇게 적나요?"
"그냥 낙서예요. 습관이라서."
이게 답일까? 적자생존. 적어야 산다.
어느 순간, 맨날 적고 있는 나를 발견한 뒤, 이젠 그 모습 자체를 즐긴다. 적는 순간, 속이 시원하다. 낙서하듯 막 적기에,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사람과는 또 다르다. 그걸 가지고 뭐에 쓸 생각도 없다. 그냥 적는 것이다. 그리고 휙~~ 집어던진다. 어디에다 끼어 넣어 뒀는지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노트가 필요한 것이겠지? 일회적으로 뭔가를 들어야 하는 경우엔, 아무 종이에다 휙 갈겨쓰고, 어딘가에 쑤셔 넣어 둔다. 그래도 돼. 그런데, 독서 모임 기록이라든가 공부할 때 한 메모라든가 이런 건 쓸모가 있는 메모이기에 공책이 있으면 좋다. 공책에 메모를 해 놓으면, 막 갈겨쓰기에 그 순간은 지저분해 보일 지라도, 나중에 보면 매우 요긴하다.
별 쓰잘 데 없는 것까지도 하나, 둘, 셋. 메모해 놓은 내 자신이 기특하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생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메모도 쎄고 쎘다.
친구와의 교환일기도 메모이고, 혼자 쓴 수많은 일기도 메모이고, 여고 시절 좋아하는 선생님한테 보낼 편지의 초고도 메모이고, 군대 간 남자 친구에게 쓴 몇 백통의 편지도 메모이고, 내 아이들 육아일기도 메모이고, 요즘도 쓰고 있는 각종 생활일지, 생각노트, 독서일지, 독서기록, 요가일지도 모두 다 메모이다.
메모, 메모, 메모.
메모의 힘은 강하다. 그 순간, 쓰고 다시는 안 보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 순간 쓰면서 난 희열을 느낀다. 손톱의 때가 쏙쏙 빠지는 시야의 시원함. 그 순간, 난 그 느낌을 즐긴다.
때론 동어반복이 될지라도, 쓰고 쓰고 또 쓴다. 계속 쓰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계속 쓰다 보면 굵은 그 무엇이 나온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 혹은 내 무의식에 있던,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 했던 그 어떤 말이 나오기도 한다.
나에게 메모는 낙서이고, 글이고, 일기이고, 그림이다. 메모를 하는 혼자만의 시간, 그 시간 난 숨 쉴 수 있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 조용히 나 혼자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그 틈을 난 매우 소중히 여긴다.
오늘도 난 그 틈이 필요하다. 그 틈이 날 숨 쉬게 한다. 그 틈이 날 안정시킨다.
메모, 넌 나의 퀘렌시아야.
나만의 숨을 곳, 나만의 숨 쉴 곳, 나만의 고독.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