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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도 Jan 29. 2023

멈춤: 뇌 신경세포에 불이 붙었어요

몸이 멈추고 마음도 따라 멈추었습니다

상사의 갑질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사를 하고 자유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담이의 마음은 아주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겪던 스트레스, 내로남불, 아전인수식인 상사의 태도, 미덥지 않은 퇴직금 정산으로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늘 모범생이었고, 10대 시절에도 그 흔한 욕 한번 쉽사리 입 밖으로 내뱉지 않던 아이였는데, 이 회사에 다니면서 30대 나이에 입에 욕을 달기 시작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 스트레스였는지 대충 짐작이 되려 합니다. 이제 월급은 안 받을 거라고, 난 창업할 거라고 독립선언하고 나왔지만, 덜 풀린 분과 이제는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소득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은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 주지 못할 숙제입니다. 


출근 안 한다고 늑장 부리지도 않고 멀지 않은 곳에 마련한 공유오피스에 1등으로 도착합니다. 때마침 프로젝트 제안이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참여합니다. 무엇도 보장되지 않기에 그 무엇이라도 확정해 보려고 꼼꼼하게 계획해 봅니다. 이건 다음 달 말일까지 완성하고, 이번 달은 저걸 완료하고, 그러려면 이번 주에는 그걸 해야 하고… 머릿속 생각은 속도를 높여가고 어느새 해야 하는 일보다 생각하는 일에 더 깊이 몰입되어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루하루가 꽤 바쁩니다. 바쁜데 익숙한 담이입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프로젝트에서는 속초로 팀워크 강화 차원에서 워크숍을 떠나자는 제안이 나옵니다. 흔쾌히 수락합니다. 팀워크는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고 몸살기운이 느껴집니다. 감기인가? 밤에 자려고 누우면 귀에서는 이명이 들립니다. 귀가 이상해서 이비인후과를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의심되는 병에 맞는 약을 처방받습니다. 그런데 약으로도 쉽사리 증상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상합니다.


워크숍 날짜는 다가오는데 몸이 나아지질 않습니다. ‘몸살이면 며칠이면 괜찮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프로젝트팀이 모이고 첫 ‘약속’입니다. 책임감 강한 담이는 ‘약속’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겨우 몸살 가지고 팀워크 형성에 훼방 놓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워크숍 당일 아침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워크숍 일정 마치면 저녁에는 좀 일찍 쉬어야 할 듯해요…” 워크숍에서는 보통 낮 일정을 마치면 저녁에는 진짜 팀워크 형성이 시작됩니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편하게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시간이지요. 그 시간까지 함께 해주지 못하는 몸 상태가 담이는 미안합니다.


겨우 1박 2일 워크숍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옵니다. “어 이것 봐요… 나 이마에 이상한 여드름이 났어.. 으.. 막 진물도 나고. 징그러워 …” 담이의 왼쪽 이마와 두피에는 이상하리만큼 크고 단단한 여드름이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져도 아프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니 터져서 진물이 흐릅니다. 거울 보기가 불편합니다. “병원을 가봐야 할 거 같은데… 오늘 서울 가면 피곤하니 내일 가죠, 뭐.” 


도저히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몸이 너무 힘듭니다. 어기적 어기적 몸을 이끌고 간 병원에서 담이의 얼굴을 본 의사 선생님은 표정이 굳고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왜 병원에 이제야 왔어요, 왜! 이게 얼마나 아픈 병인지 알아요?” “아무것도 하면 안 돼요! 무조건 잘 먹고, 무조건 쉬고!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 징그러운 여드름은 대상포진 수포였습니다. 대상포진. 들어본 적은 있는 단어인데 구경도 못해본 병이라 담이는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몸살인 줄 알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다녀온 워크숍으로 대상포진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그날 밤부터 이 병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달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상포진은 우리 몸 전체에 포진하고 있는 신경세포에 염증이 생기는 병입니다. 사람 몸에 스트레스 지수가 상승하고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데, 병원에서는 출산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유발하니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한다고 광고하는 염증 질환입니다. 신경세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 몸 어느 위치에도 대상포진은 발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등허리, 어떤 사람은 손바닥, 어떤 사람은 외피가 아닌 몸속에 수포가 자리하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담이의 몸에서는 3번 뇌신경세포에 염증이 발생하였습니다. 3번 뇌신경은 왼쪽 두피 아래로 타고 내려와 이마를 지나 코끝으로 연결되어 왼쪽 눈의 시신경으로 연결되는 신경세포입니다. 염증이 한껏 활성화된 담이의 뇌신경세포는 왼쪽 얼굴을 선풍기처럼 부풀렸고, 왼쪽 눈은 뜰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염증이 조금만 더 진행되면 왼쪽 시력을 잃을 수도 있으니 매일 병원에 나와서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담이는 순순히 ‘네~’라고 답합니다.


피부 바로 아래층에서 지펴진 염증의 불길은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우리가 낭만적인 캠프파이어에서 손을 따뜻하게 하려고 모닥불에 쬘 때, 손을 불 가까이 가져가면 점점 뜨거워져 어느 순간 더 가까이 가져갈 수가 없지요. 그런데 대상포진 염증은 뜨거워도 불길에 손을 넣고 뺄 수 없는 듯한 타는 고통을 줍니다. 떼어낼 수 없는 불길을 있는 그대로 감당하고 있어야 하는 담이는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 내뱉지 않는데, 도저히 아프다는 말을 삼킬 수 있는 수준의 고통이 아닙니다. “아… 아프다… 아, 진짜 아프다…” 가녀리게 고통을 내뱉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말합니다. “아프나, 다 살아있어서 그렇다.” 그렇게 엄마의 말은 담이의 불타는 고통에 외로움을 끼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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